수필가, 전 부여군부군수 나창호

【대전=코리아플러스】장영래 기자 =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함을 이르는 말이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거짓꾸밈을 일러 하는 말이다. 진실을 말하지 않고 왜곡·조작함을 이르는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2200년 전의 중국은 하루도 전쟁 없는 날이 없고, 늘 피바람이 불던 전국시대였다. 이 때 칠웅 중의 하나였던 진(秦)이 나머지 6국(한․조․위․초․연․제)을 멸하게 되는데, 그 빠름이 실로 전광석화 같았다. 6국 모두를 멸망시키는데 불과 10여년 밖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나라를 멸하는데 채 2년이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로써 중국은 처음으로 통일이 됐다. 진시황(秦始皇) 때의 일이다.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은 욕심을 냈다. 통일제국 진나라가 영원히 존속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삼황오제에서 따온 황제라는 말을 처음으로 쓰면서 자기는 시황이 되고, 2대,3대,4대... 이어서 만대에까지 이르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의 염원과는 달리 통일 진나라는 불과 3대 15년 만에 망하고 말았다. 지록위마 때문이다.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은 순행을 자주 했다. 천하통일의 자랑스러움에서인지, 지방에서의 반란을 미연에 방지할 목적이었는지 모르지만 통일천하 순행을 즐겼다. 시황제가 되고나서 근 2년에 한 번꼴로 5차례나 순행을 한 걸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마지막 다섯 번째 순행 중에 병을 얻게 되자 급히 환궁을 서둘렀지만 사구(沙丘)에 이르러 죽고 말았다. 진시황은 죽기 전에 태자 부소로 하여금 황위를 계승케 하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승상 이사가 황명을 출납하던 환관 조고의 꾐에 넘어가 부소가 아닌 막내아들 호해가 황위를 계승토록 하는 유조 변조사건을 일으킨다. 이사와 조고는 똑똑한 부소가 황제가 되면 자기들의 권좌가 불안한 반면, 어리석은 호해를 황위에 앉히면 오래도록 권세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해, 부소가 만리장성 축성 을 위해 북방에 가 있는 기회를 틈타 변란을 일으킨 것이었다. 결국 이들은 거짓 조서를 보내 부소를 자결케 하고 호해를 2대 황제로 삼는데 성공했다.

처음에는 공동정범으로 사이가 좋았던 이사와 조고였지만 권력욕은 한이 없는 것인지 조고가 황명으로 이사를 허리 잘라 죽이고 승상자리까지 뺏어 권력을 독차지하게 되는데, 이 때 지록위마 쇼가 연출되었다.어느 날 황제가 함께한 자리에서 조고가 ‘사슴을 가리키며 좋은 말’이라고 했다. 이에 어리석은 황제가 “승상은 어찌 사슴을 말이라고 하느냐”고 묻자, 조고는 “사슴이 아니라 말”이라고 우기면서 “신하들에게 확인해보자”고 했다. “말이 아니라 사슴”이라고 말한 강직한 신하도 몇몇 있었지만, 조고의 권세를 두려워한 대부분의 신하들은 조고의 뜻에 맞춰 “사슴이 아닌 말”이라고 했다. 지록위마라는 사자성어는 이래서 나왔다. 이후 조고가 반대파를 숙청하고 조정을 좌지우지하게 되면서 통일제국 진나라는 몰락의 길로 치닫게 된다.

언로를 틀어막고 비판세력을 모두 제거했으니 조정에서 더 이상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람이 없었다. 조정이 잘될 일이 없는데 나라 일이 잘되겠는가? 나라는 다시 혼란스러워졌고 민심은 이반했다. 조정에서 대소 관료들이 시중의 민심과 여론을 살피고 대처해야하는데 전혀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2200년 전에 방송이 있었겠는가, 신문이 있었겠는가. 시중의 여론을 듣고 분석하고 민심을 반영하는 것은 오직 관료들이었을 터인데, 입이 막혀 옳고 그름을 따지지 못하고 권력자의 입맛에 맞는 왜곡과 조작이 난무하면서 그릇된 정책들만 내놓으니 백성들이 등을 돌렸던 것이다. 마침내는 침략을 받는데도 싸우려는 백성들이 없었다.

초의 항우와 한의 유방이 선두를 다투면서 수도 함양을 향해 진격해왔다. 조고는 민심수습책으로 어리석은 호해를 제물삼아 처형하고 부소의 아들 자영을 제3대 황제로 앉혔지만, 은인자중하며 조고 타도의 기회를 노리던 자영은 황위에 오르자마자 조고부터 처단했다. 무소불위 권력자의 비참한 말로였고, 인과응보였다. 그러나 항우의 손에 자영이 살해되면서 통일제국 진나라도 멸망한다. 기원전 206년의 일이다. 우리는 여기서 언로가 원활해야 나라가 존속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사회에 있어서 언론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언론은 국가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제4의 권력이기도 하다. 따라서 언론이 건강해야 국가와 사회가 건강할 수 있다. 언론이 병들면 국가와 사회도 병든다. 언론이 길을 잘못 선도하면 좋은 길을 두고 나쁜 길로 빠질 수 있다. 따라서 언론은 국가와 국민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나침판이 되고 목탁이 되어야 한다. 언론은 권력이 썩지 않게 하는 소금이어야 하고, 사회의 어두운 곳을 밝게 밝히는 빛이어야 한다. 또한 언론은 국민들이 실의에 빠지지 않고 희망을 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언론의 역할이나 기능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정보전달이 아닐 수 없다. 국민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사실 그대로를 전달해 주는 언론은 좋은 언론이다. 사실을 과장하거나 축소 왜곡해서 보도하는 언론은 나쁜 언론이다.

더구나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허위사실을 날조하거나 조작해서 보도하는 언론은 나쁜 언론이고 그른 언론이다. 국가안위와 국민 삶을 걱정하며 국민들을 바른 길로 선도하는 언론은 좋은 언론이고 옳은 언론이다. 권력에 기생하거나 권력의 입맛에 맞는 나팔을 불어대는 언론은 나쁜 언론이고 그른 언론이다.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을 우려해 스스로 보도를 자제하는 언론은 옳은 언론이고, 국민이 알아야 할 사실까지를 일부러 숨기는 언론은 그른 언론이다. 지금 우리는 언론의 홍수시대를 살고 있다. 신문이고 방송이고 간에 그만큼 종류가 많아지고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국민들이 좋은 언론과 나쁜 언론, 옳은 언론과 그른 언론을 가려내고 분별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언론이 보도하는 그대로를 무턱대고 받아들여서는 그릇된 정보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문을 안 보고 방송을 듣지 않는다.’는 사람들을 접할 때가 많다. 언론을 그만큼 불신해서 그러하겠지만, 옳은 자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교하고 평가해서 옳은 언론인지 그른 언론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요즘은 신문이나 지상파 방송만이 언론이 아니다. 사실에 입각해서 보도를 하는 유튜브 방송도 많이 있다. 이를 듣고 비교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지록위마가 통하지 않게 하려면 시청자와 독자가 먼저 똑똑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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