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에 기록된 진안 ‘동향소(銅鄕所)’에서 구리 생산유적 드러나

【진안=코리아플러스】최낙철 기자 = 전북 진안군 동향면 대량리 제동(製銅)유적에서 호남 최초의 구리 생산유적이 확인됐다.

발굴조사는 전라북도(도지사 송하진)와 진안군(군수 이항로), 군산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소장 곽장근)에서 실시했다.

유적에서는 구리를 생산했던 제동로(製銅爐) 2기와 대규모 폐기장, 건물지 1기가 조사되었는데, 유적은 고려시대를 중심으로 운영된 것으로 판단되나, 삼국시대 토기가 일부 수습됨에 따라 고려시대 이전부터 운영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제동로(製銅爐)는 구리를 생산하는데 사용되는 노(爐, 가마와 유사)시설의 통칭(統稱)이다. 폐기장(廢棄場)은 구리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폐기물을 버리는 곳이다.

그동안 진안 동향면(銅鄕面) 지역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등 문헌기록에 등장하는 특수행정구역인 ‘동향소(銅鄕所)’가 있던 곳으로, 구리 생산유적이 존재할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제동로와 폐기장 등이 확인되면서 문헌기록으로만 알려졌던 ‘동향소(銅鄕所)’의 실체가 드러나게 된 것.

진안 대량리 제동유적은 지난해 11월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의 지원 하에 실시된 시굴조사에서 대규모 슬래그 폐기장과 제동로 추정 유구가 확인됐다. 이에 이번 발굴조사는 시굴조사에서 확인된 추정 제동로의 현황과 유적의 성격을 규명하기 위해 실시됐다.

제동로는 총 2기가 조사되었는데, 모두 노벽(爐壁)과 배재구(排滓口) 등의 상부구조는 유실되었고, 노를 축조하기 위한 하부구조만 남아있었다.

2기 중 잔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2호 제동로는 지표를 얕게 파낸 후, 위에 흙과 석재를 50㎝ 가량 쌓아 하부구조를 조성하였는데, 석재는 평면형태가 장방형(長方形)에 가깝다.

제동로 동남쪽에는 흘러내린 유출재(流出滓)가 남아있으며, 이와 가까운 곳에 지형을 다듬어 슬래그를 배출하기 위한 시설인 배재부(排滓部)가 조성되어 있다. 2호 제동로는 노의 구조와 유출재의 존재로 볼 때, 제련(製鍊) 공정을 담당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슬래그(Slag)는 구리생산 과정에서 배출되는 불순물의 통칭이다. 배재구(排滓口)는 노벽체에 뚫린 구멍으로 슬래그를 노 밖으로 빼내는 역할을 한다.

유출재(流出滓)는 노 밖에서 흘러내려 굳은 슬래그, 제련공정의 명백한 증거다. 제련(製鍊)은 원석에서 1차로 구리 등 금속을 추출하는 공정이다.

또한 조사지역 서남쪽 조사경계 부분에서는 건물지 1기의 일부가 조사되었는데, 구리 생산집단의 생활공간 또는 제련을 통해 생산된 구리를 가공해 완성품을 제작하기 위한 공방지(工房址)일 가능성이 있다.

유적은 폐기장 하층에서 수습된 유물로 볼 때, 고려시대를 중심으로 운영된 것으로 판단되며, 문헌기록에 등장하는 동향소(銅鄕所)의 실체를 보여주는 유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유적 내에서 삼국시대 토기가 일부 수습되어 유적의 운영시기가 고려시대 이전으로 소급될 가능성도 있다.

그 동안 구리를 2차 가공해 완성품을 만든 흔적은 부여 관북리, 익상 왕궁리 등에서 조사된 바 있으나, 원석에서 구리를 1차적으로 생산한 유적은 경주 일부지역 외에는 거의 조사된 예가 없다.

때문에 이번 진안 대량리 제동유적은 우리나라와 호남지역 구리생산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전북지역 초기철기시대 및 전북가야 유적 출토 청동유물 등의 원료산지와 유통관계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진안군은 이번 조사 성과를 토대로 추가 발굴조사와 문화재 지정을 추진하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유적 정비와 활용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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