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플러스, 2018 코리아 힐링 페스티벌 ‘금강생태여행’

【세종=코리아플러스】 장영래 기자 = 코리아플러스가 2018 코리아 힐링 페스티벌을 29일 토요일 금강생태 4차 여행은 세종시 합강과 호수공원을 여행한다.

세종시가 다음달 6~9일 여섯 번째 '세종축제' 개최하며 특별프로그램으로 호수공원 둘레길 걷기대회를 진행한다.

이번 금강생태여행은 이에 앞서 합강과 호수공원을 걷는다.

합강은 미호천과 대청댐물이 합쳐진 세종시 금강을 말한다.

 

전라북도와 충청북도를 거쳐 흐른 금강은 대첨댐에 모인다.

 

충청북도의 미호천, 여기에 대전시의 유등천과 대전천이 합쳐진 갑천이 합쳐진 금강은 세종시 합강에서 만난다.

 

정부 세종청사 앞에 세종호수공원이 있다.

미호천(美湖川)은 충북 음성군의 망이산에 있는 음성 망이산성(안성에 같은 이름이 있어 음성 망이산성이라 함) 옹달샘에서 발원하며 약 37.5km를 흐른다.

충북 음성군부터 증평군 보강천의 합류지점까지 지방하천으로 지정하고 있다.

충북 증평군 보강천부터 금강까지 국가하천으로 지정하고 있다.

미호종개는 처음 발견된 곳이 미호천이어서 ‘미호종개’라는 이름이 붙었다.

미호천의 지류들은 모두 지방하천이나 소하천이다.

그 지류들은 도청천, 성산천, 칠장천, 구암천, 장량천, 진천, 한천, 백곡천, 초평천, 보강천, 성암천, 석화천, 무심천, 석남천, 병천천, 노송천, 조천, 월하천, 문주천, 봉암천, 연기천, 내삼천이 있다.(위키백과)

대청다목적댐은 대전광역시 대덕구 신탄진동과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덕유리 사이의 금강 본류를 가로지르는 댐이다.

 

명칭은 과거 댐이 만들어질 때 행정구역이었던 대덕군(현 대전광역시)과 청원군(현 청주시)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1975년 3월에 공사를 착수하여 1981년 6월 완공되었다.

 

높이 72m, 길이 495m, 저수면적은 72.8km2, 체적 123만4천m3의 중력식 콘크리트댐과 사력댐으로 구성된 복합형 댐으로 금강 하구로부터 150km 상류지점인 대전광역시 동북방 16km, 청주시 남방 16km 지점에 있다.

 

주요시설로는 저수용량 14억9천만m3의 본댐과 조정지댐이 있으며, 본댐 주변에는 저수지내의 물이 다른 지역으로 넘치지 못하도록 해 주는 3개의 보조댐이 있다.

 

또한 대전광역시와 청주시를 비롯한 충청권 일부지역으로 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도수로와 시설용량 9만㎾의 수력발전소가 있다.

 

대청댐으로 생긴 대청호는 저수량 기준으로 대한민국에서 소양호와 충주호에 이어 세 번째로 큰 호수이다.

세종시가 다음달 6~9일 여섯 번째 '세종축제' 개최하며 특별프로그램으로 호수공원 둘레길 걷기대회를 마련했다.

세종시가 여섯 번째 세종축제를 다음달 6~9일 호수공원과 조치원 일원에서 개최한다.

이번 축제는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을 맞아 그의 업적과 정신을 계승하고, 문화도시 이미지를 구축하고자 한글날에 맞춰 개최하게 됐다.

이번 축제는 날아오르다 600년 세종의 꿈을 주제로 시민이 만들어 가는 축제로 진행한다.

이번 축제는 세종 즉위 600년을 기념하는 '세종대왕과 음악(音樂), 황종(黃鍾)' 전시회와 즉위의례를 재현한 어가행렬, 기념주화 전시회도 열린다.

아울러 이번 축제 기간 동안 합강공원 힐링캠프, 자전거축제, 예술제, 왕의물 축제, 김종서장군문화제, 반려동물 문화축제 등 다채로운 행사들이 함께 열린다.

볼거리로 축제기간 동안 축제장 주변을 운행하는 '코끼리 열차'와 '시티투어' 차량도 오송역~호수공원~영평사 구간에서 운영할 예정이다.

이춘희 시장은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을 기념하는 올해 축제가 개최된다"며 "시민 여러분의 관심과 많은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금강생태여행 환경기자단 참가자들은 지난 1일 오전 11시 뜬봉샘 생태공원에 모여 코리아플러스 환경기자단 환경감시단 출범식을 가졌다.

금강의 발원지는 뜬봉샘(飛鳳泉). 전북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 금남호남정맥의 산줄기인 신무산(896.8m)은 발원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섬진강과 금강의 분수령이 있다.

여기에 오는 비가 서쪽으로 떨어져 흐르면 섬진강을 거쳐 남해로 흐르고 동쪽으로 떨어져 흐르면 금강을 따라 흘러 서해로 들게 된다.

수분령(水分嶺). 금강과 섬진강을 가르는 분수령이다.

이어 금강생태여행 2차 코리아플러스 환경기자단은 8일 섬진강 발원지인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데미샘을 찾아 환경기자단 환경감시단 섬진강환경지킴이 발대식을 한 뒤 뜬봉샘 생태공원에 모여 코리아플러스 환경기자단 환경감시단 금강환경지킴이 선언을 했다.

금강생태여행 3번째 여행은 충남 공주시의 공산성과 송산리고분군에서 출토된 무령왕릉 출토유물을 보관 전시하는 국립공주박물관을 관람했다.

이어 700년 대백제의 굼을 간직한 부여의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능산리고분군과 정림사지 오층석탑 등을 둘러봤다.

백제 인들이 꿈꾼 익산의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와 함께 금강유역의 마을과 축제, 생태를 느껴보는 가을여행을 만끽했다.

이날 여행은 오전 11시 공산성에 집결 한 뒤 등산을 진행하는 금강생태여행 일정을 가졌다. 여행 진행은 장영래 코리아플러스 대표이사 010-4408-4478로 하면 된다. 참가비는 1만원이다.

금강은 전라북도 장수군의 뜬봉샘에서 발원하여 무주·금산·영동·옥천·보은·청주·대전·세종·공주·청양·논산·부여·서천을 지나 군산만에서 서해로 유입되는 약 402km의 강입니다.

 

금강은 호수처럼 잔잔하다 하여 '호강'이라고 불리기도 하였고, 금산군에서는 '적벽강', 부여군에서는 '백마강'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금강의 주요 지류로는 갑천·논산천·미호천이 있다.

 

이에 비옥한 호서평야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대전광역시 금강 유역에 대청댐이 있고, 하류에는 금강하구둑이 있습니다.

 

금강은 대전·충청권의 주요 생활·산업·농업용수로 이용되고 있으며, 과거에는 수로 교통이 발달하여 금강 유역을 중심으로 도시가 번성하였습니다.

 

1. 유래예로부터 금강은 비단처럼 아름답다 하여 錦江(비단강)이라 하였으며 그 물줄기를 따라 구간마다 다른 명칭으로 불리워 왔습니다. 「택리지」에 의하면 영동군 일대는 ‘심천’, 옥천군 일대는 ‘적등강’, 공주 부근을 ‘웅진강’, 그리고 그 아래를 ‘백마강’, ‘강경강’, ‘진강’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서」에는 금강을 ‘웅진강’이라 했고, 「동국여지승람」에는 금강의 명칭이 지역에 따라 다르게 기록되어 있는데 상류로부터 ‘적등강’, ‘호강’, ‘차탄강’, ‘화인진강’, ‘말흘탄강’, ‘형각진강’으로 되어 있으며,

 

공주에서는 ‘웅진강’, 부여에서는 ‘백마강’, 그리고 하류에서는 ‘고성진강’으로 되어 있습니다.

 

영동군 일대를 흐르는 강물을 심천 또는 지푸내라 부르는데 이곳은 경부선 철도가 통과하는 지점으로 교통의 요지입니다. 부근에 초강과 심천유원지가 있습니다.

 

적등진은 옥천과 영동의 중간에 위치한 나루터로 영남지방과 호서지방을 잇는 길목이며 추풍령을 넘고 금강을 건너 서울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입니다.

 

산 높고 물 맑은 옥천

 

옥천의 신라 때 이름은 고시산군(古尸山郡)이며, 조선 태종 때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북쪽으로 금강과 인접하고, 서쪽은 대전과 고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그 일대의 산천이 수려하고 깨끗하며 흙빛이 맑아서 서울의 지세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택리지』에는 “평야가 매우 메말라서 논도 수확이 적고, 주민은 오직 목화 심는 것으로 업을 삼고 있다. 이곳 땅이 목화 가꾸기에 가장 알맞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은 목화 대신 포도와 감 그리고 묘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옥천에 대해 조선시대의 학자 남수문은 기문에서 “산 높고 물 맑으며, 땅이 기름지고 물산은 푸짐하다”라고 하였다.

 

금산, 영동, 옥천을 지나는 강을 적등강(赤登江)이라 부르며 강물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른다.

 

경부선 철교가 보이는 이원면에 옛날 적등진이라는 나루가 있었다.

 

옥천과 영동 중간에 위치하여 영남지방과 호서지방을 잇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추풍령을 넘고 금강을 건너 서울로 통하는 요충지였던 적등원1) 옆에는 적등루라는 누각이 있었다.

 

지금은 누각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서거정은 기문에서 이렇게 쓴 바 있다.

 

 

옥천은 사무가 번잡한 고을로 남기의 주집(走集)이다.

 

서울에서 충청도로 가고 충청도에서 경상도로 가는 길목이어서 사신과 여행자들의 오가는 말굽과 수레가 날마다 서로 잇따라 있다.

 

군의 동남쪽 30리쯤에 속읍이 있으니 이산이라 하고, 강이 있어 넓이 수십 리에 가로질렀으니 적등이라 한다. 그 위에 원이 있고 누각이 있으니 참으로 큰 길거리의 중요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크게 더울 때나 몹시 추울 때나 모진 바람 불고 비 오는 괴로운 날에 길가는 이들이 여기에 와서 머물고, 혹은 물을 건너기 어려울 때나 길이 늦었을 때 마소가 모자라거나 도둑의 염려가 있을 적에는 여기서 쉬기도 하고, 누에 올라 구경하기도 하고 자고 묵기도 한다. 추울 때는 따뜻하게 해주고 더울 적에는 서늘하게 해주니, 사람들에게 덕을 줌이 어찌 적다 하겠는가. 그러나 건물을 지은 지가 오래되어 헐어서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

 

 

적등진 나루영남지역 선비들이 추풍령을 넘어 서울로 가던 중요한 길목으로, 적등진나루와 이원이라는 원집이 있었다. 지금은 경부선열차가 지나고 있다.

 

또한 이직은 “오가는 길손들이 하루에 만 명이 넘어 다투어 강을 건너는데 배는 한 척뿐, 다시 적등루에 올라 시를 지으니 갈매기도 한가로이 물 가운데 떠 있구나”라고 노래하였는데, 사실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당시 적등진에서 갈매기는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적등진을 지난 물길은 옥천 동쪽에 있는 청성면에 와서 속리산 자락의 보은군 내북면 하궁리에서 비롯된 보청천 물과 합쳐지고, 서쪽으로 굽이져 흘러 금강이 된다.

 

적등강의 동편이 장수ㆍ무주ㆍ영동ㆍ황간ㆍ청산ㆍ보은이고, 서쪽이 진안ㆍ용담ㆍ금산ㆍ옥천이다.

 

장수ㆍ무주ㆍ용담ㆍ진안은 전라도 땅이고, 옥천ㆍ보은ㆍ청산ㆍ영동ㆍ황간은 충청도 땅이다.

 

무주와 장수는 덕유산 밑에 있는데, 큰 산과 깊숙한 골짜기들이 많다.

 

 

(출처 :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5 : 충청도, 2012. 10. 5., 다음생각)

 

 

 

 

2. 역사

 

1) 선사시대

 

금강의 구석기 시대 유적은 공주 석장리 유적으로 대표됩니다.

 

공주석장리 유적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구석기 시대 유적으로 공주시 장기면 석장리의 금강 북안에 자리합니다. 석장리 유적은 지금부터 약 13만~30만 년 전의 전기 구석기로부터 중기, 후기 구석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층이 발견되고 있어 구석기시대부터 오랜 기간에 걸쳐 금강 유역에 사람이 살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금강유역에서 조사된 몇몇의 신석기시대 유적이 위치한 입지조건을 보면 지금까지 보편적으로 여겨져 왔던 바닷가나 큰 강가보다는 강을 따라 내륙 쪽으로 깊숙이 들어간 상류지역이나 샛강 옆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의 유물을 보면 금강을 중심으로 터전을 잡고 살았던 당시의 사람들은 신석기시대의 비교적 늦은 시기에 이곳에 머무르면서 살림을 꾸렸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금강유역에서의 청동기 시대와 관련된 유적은 전기에서 후기에 이르기까지 집중적으로 발견되고 있으며, 유적 또는 주거지를 비롯한 생활유적과 무덤유적 등 그 내용이 상당히 다양하고 분포지역도 폭넓게 퍼져 있습니다. 부여 송국리 유적은 금강유역에서는 물론 남한지역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의 최대 유적으로 전기와 후기의 전환점이 되는 중요한 유적이며, 중서부지역에서 발생한 독특한 청동기 문화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 삼국시대

 

삼한 소국의 하나로 출발한 백제가 처음에는 한강유역에 세력권을 형성하고 있다가 475년에 지금의 공주 지역인 웅진성에 새로운 국가의 터전을 마련하였습니다. 웅진에 천도한 백제는 동성왕 대에 이르러 국가 중흥기틀을 마련하고, 무령왕 대에는 확실한 정치적 안정과 함께 국력 증진을 이루었습니다.

 

무령왕을 이어 즉위한 성황이 16년에 사비로의 천도를 단행하면서 백제는 다시 한 번 중흥의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사비지역 천도이후 국가적 중흥을 이룬 성왕은 고구려에게 빼앗긴 한강 유역을 탈환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여 신라와 연합하여 한때 한강일대를 탈환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하지만, 신라의 역공으로 다시 한강유역을 상실하였고 이에 보복전쟁을 하는 등 혼란을 거듭하다가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받고 백제는 멸망을 하였습니다.

 

백제가 멸망된 후 금강유역에서는 백제의 부흥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났으나 결국 나당연합군에 의해 진압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신라는 옛 백제지역과 그 지역의 주민을 포함하여 9주 5소경 체제를 마련하였고, 백제지역에는 웅천주, 완산주, 무진주 등의 3개 주가 설치되었습니다.

 

 

3) 고려시대

 

왕건의 고려건국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대세력은 금강유역의 청주, 공주지역의 호족 세력이었습니다. 청주에서는 두 차례의 반란이 일어났고, 공주에서는 이흔암이 궁예에 대항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고려 초기에는 이 지역 출신이 중앙의 높은 관직에 오르지 못하였고, 중엽에는 가끔 재상의 지위에 오른 자도 있었으나 매우 드물었습니다. 또한 고려시대에는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였는데 이를 막기 위하여 금강유역의 서쪽에 수많은 읍성을 개축하였습니다.

 

 

4) 조선시대

 

조선이 개국하면서 금강유역의 계룡산지역이 새로운 수도 후보지로 떠오르게 됩니다. 금강은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최대 곡창지대인 전라북도와 충청도 일대를 관통하는 큰 강으로 공주까지 선박의 통행이 비교적 자유로운 강이었기 때문에, 금강유역의 계룡산 신도내가 강력한 후보지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금강수로의 편리함은 이후 조운제도나 조선후기 상품유통의 발달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조선의 조창은 모두 9개로서 금강유역의 각 군현의 조세는 충청도 내륙 깊숙한 지역인 황간, 영동 등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아산의 공세곶창과 용안의 덕성창에 수납되었습니다. 금강 북안의 각 군현의 세곡과 충청도 북부지방의 세곡은 아산의 공세곶창에 모아져 조운으로 한양에 옮겨졌는데, 이는 금강 수로를 이용할 경우 한양으로 통하는 해로의 중간에 위치한 안흥량의 험난함 때문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금강 하류에 위치한 용안의 덕성창은 이러한 전라도 북부지역의 세곡이 집결되는 곳으로 본래 위치는 용안의 금두포였으나 세종 때 감세의 피포로 옮겨 성당창으로 개칭하였다가, 성종 때 다시 용안창으로 옮기고 이름을 덕성창이라 하였습니다. 덕성창은 전국의 조창 가운데 가장 많은 선축을 보유한 최대 규모의 조창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 최대의 곡창지대의 새곡이 금강하류에 집결되어 운송됨으로써 금강은 충청, 전라도 일대의 산물이 집결하는 유통로가 되었습니다. 동시에 일찍부터 상업이 발달하여 조선후기 가장 선진적인 상업발달지역의 하나가 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금강유역은 17세기 삼남지방을 중심으로 한 이양법의 발달, 수전 이모작의 보급, 제언 · 보 등 수리시설의 발달로 농업생산력이 크게 증진되었습니다. 임진왜란 직후 급격히 축소·황폐화된 농경지를 확보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춘 곳이었습니다. 금강유역으로 흘러 들어가는 수많은 지류는 보의 신축과 신전개발의 주요대상지역으로 넓은 면적을 관개할 수 있는 대보가 발달하였습니다.

 

금강유역은 국가전매의 소금과 주변유역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미곡이 거래되는 중심지역이 되어 장시의 발달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앞서 나갔다. 대표적인 전주의 사탄, 강경의 강경포 등이 있습니다.

 

 

5) 근대시대

 

일제에 의해 조선이 합병되면서 공주 등 전통적 기반을 지녔던 지역들이 점차 축소되고, 금강 중하류의 중심지는 새롭게 성장하는 대전 지역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금강유역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던 기존의 문화적 기반들은 상대적으로 축소되었습니다. 1932년 대전으로의 도청 이전은 그 같은 작업의 하나였습니다.

 

지형 상으로 공주가 천연의 요새지로 육운과 금강을 이용한 수운이 발달하여 호서의 중심으로 오랫동안 지위를 확보하였었습니다. 그러나 철도교통이 교통로의 간선을 이루게 되자 종래 육운의 교통로는 새로 개통된 철도의 영향 하에 흡수되어 버리고 동시에 운하 역시 토사퇴적과 철도교통의 발달로 그 중요성이 상실되어 버렸습니다. 1905년 경부선 개통과 1914년 호남선 개설은 금강 중하류의 중심지를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동시켜 이 지역 전통적 기반을 해체시키는 또 하나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6) 현대시대

 

광복 후 금강유역은 별다른 변화의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1970년대 ‘금강유역조사’를 계기로 유역의 수자원개발을 위한 기본구상이 완성되었습니다. 유역조사의 결과로 대청댐이 완공되어 대전·청주지역의 용수공급을 담당하게 되었으며, 서해안 해안지역의 논농사를 위한 삽교호·금강하구언 등의 농업용수 공급시설이 완성되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금강 상류에 용담댐을 건설하여 전주 인근지역의 생활용수 공급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에 완공된 경부고속도로 및 호남고속도로는 금강유역과 서울을 1일 생활권으로 만들었으며 이로 인한 물류혁신으로 수많은 공장과 주택 등이 대규모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교통의 발달은 대전 및 전주권을 중심으로 대규모 공단을 증설하여 지역의 소득증대에도 이바지하였습니다.

 

 

 

 

[금강 모식도]

 

3. 문화금강유역은 풍요로운 문화의 젖줄이 되었고, 또한 서쪽으로는 서해를 사이에 두고 중국대륙과 마주하여 중국의 선진문화를 수용하는데도 매우 유리하였습니다. 서해 연안을 따라 남북으로는 한강 유역과 영산강 유역의 문화가 해로로 연결되는 유리한 조건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금강 유역은 농업 선진지역이었고 농업발달에 따른 생산력과 수로교통을 바탕으로 상품유통경제가 크게 발달하여 조선후기 자본주의의 발생에 있어 가장 앞선 지역의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인문환경과 자연조건은 이 유역을 한국의 독특한 지역문화를 꽃피웠던 문명의 발상지이자 중심지로 자리 잡게 하였습니다.

 

근대교통이 발달하기 이전 지역 간 물화의 교역은 육로보다는 수로에 의한 것이 더 컸습니다.

금강 유역에는 비옥하고 넓은 평야가 발달하여 일찍이 많은 인구가 거주하였으며 물동량도 많았습니다. 이에 따라 육상교통이 발달하기 전까지는 금강의 내륙 수운이 매우 발달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최대곡창의 세곡이 금강하류에 집결되어 운송됨으로 인하여 금강은 충청, 전라도 일대의 산물이 집결하는 유통로가 되었습니다. 이로써 금강유역은 일찍부터 상업이 발달하여 조선후기 가장 선진적인 상업발달지역의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18세기 이후 미곡, 면화, 면포 등이 주요한 상품으로 등장하면서 장시가 발달하자 금강유역의 공주, 청주, 강경 포구는 전국적으로 대표적인 상업도시로 발전하였습니다.

 

이 중 강경포구는 금강유역의 대표 포구 및 원격지 교역의 창구로서 각지의 상선이 모여 교역을 행하는 대도회지로 발전하게 됩니다.

 

금강 수운의 이러한 기능은 개항기와 일제시대에 그 절정을 이루었으며, 1899년 군산항에 개항을 계기로 대형선박의 출입이 잦아지면서 금강 수운은 상업적 이용이 크게 촉진되기도 했습니다.

 

[출처] 금강유역조사보고서(2006, 국토교통부- 한국수자원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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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정간(長白正幹)

북쪽으로 두만강, 남쪽으로 어랑천·수성천의 분수령이다. 백두대간의 원산 설령봉에서 일어나 만탑봉(2,205m), 괘상봉(2,136m), 궤상봉(2,541m), 관모봉(2,541m), 도정산(2,201m)을 지나 함경북도 내륙을 서북향으로 관통하는 산줄기이다. 도정산 이후 산세가 죽어들어 이후 고성산(1,756m), 차유령, 백사봉(1,138m), 송진산(1,164m)으로 이어져 두만강 하구 서수라곶에서 끝을 맺는다.

낙남정맥(洛南正脈)

북쪽으로 줄곧 낙동강을 받드는 낙남정맥은 남부해안지방의 분계선으로 생활문화와 식생, 특이한 기후구를 형성시키는 중요한 산줄기이다. 지리산 영신봉에서 시작하여 남하하다 옥산(614m)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대곡산(543m), 여항산(744m), 무학산(763m), 구룡산(434m), 대암산(655m)을 거쳐 낙동강 하구를 지키는 분산(盆山)에서 끝난다.

청북정맥(淸北正脈)

평안북도 내륙을 관통하며 압록강의 남쪽 울타리를 이룬다. 웅어수산에서 시작하여 낭림산을 지나 서쪽으로 흐른다. 갑현령(1,001m), 적유령(964m), 삼봉산(1,585m), 단풍덕산(1,154m)를 지나 온정령(574m)에서 산세가 수그러들어 신의주 남쪽 압록강 하구의 미곶산에서 끝난다.

청남정맥(淸南正脈)

웅어수산에서 시작하여 낭림산이 첫산이며 청천강의 남쪽 유역과 대동강의 북쪽 유역을 경계하는 분수령이다. 청남정맥의 으뜸산은 묘향산(1,365m)이며 이후 산줄기는 용문산(1,180m), 서래봉(451m), 강룡산(446m), 만덕산(243m), 광동산(396m)을 지나 용강의 남포에서 대동강 하구 광량진으로 빠진다.

해서정맥(海西正脈)

우리나라 북부와 중부지방의 문화권역을 경계하고 있는 분수령이다. 백두대간 두류산에서 시작하여 서남쪽 개연산에 이르러 다시 북상하다 언진산(1,120m)에서부터 남하하기 시작하여 멸악산(816m) 지나 서해의 장산곶에서 끝난다.

임진북예성남정맥(臨津北禮成南正脈)

황해도의 오른쪽 울타리를 이루며 북쪽으로는 임진강, 남쪽으로 예성강의 분수령이다. 해서정맥의 화개산에서 시작하여 학봉산(664m), 수룡산(717m), 천마산(762m), 송악산(488m)을 지나 정맥의 끝은 임진강과 한강의 합수점 즉 개성의 남산인 진봉산(310m)이다.

한북정맥(漢北正脈)

북쪽으로 임진강 남쪽으로 한강의 분수령이 된다. 백봉에서 시작한 한북정맥은 백암산(1,110m), 법수령을 지나 휴전선 가까운 오성산(1,062m), 철책 넘어 대성산으로 이어진다. 포천 백운산(904m) 운악산(936m), 서울 도봉·북한산(837m), 고봉산(208m)을 지나 임진강과 한강의합류 지점인 교하의 장명산(102m)에서 끝난다.

낙동정맥(洛東正脈)

낙동강의 동쪽을 따르는 산줄기로 동해안 지방의 담장이다. 매봉산에서 시작하여 울진 백병산(1,259m) 통고산(1,067m), 울진 백암산(1,004m), 청송 주왕산(720m), 경주 단석산(829m), 울산 가지산(1,240m) 신불산(1,209m), 부산 금정산(802m)을 지나 백양산(642m)을 넘어 다대포의 몰운대에서 끝난다.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

한강과 금강을 나누는 분수령이다. 속리산 천황봉(1,508m)에서 시작하여 말티고개, 선도산(547m), 상당산성, 좌구산(657m), 보현산(481m)을 지나 칠현산(516m)에서 한남정맥과 금북정맥과 갈라지면서 한남금북정맥은 끝이 난다.

한남정맥(漢南正脈)

한강 유역과 경기 서해안 지역을 분계한다. 한남금북정맥의 칠현산 북쪽 2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칠장산(492m)에서 시작된다. 백운산, 보개산, 수원 광교산(582m), 안양 수리산(395m)을 넘으며 김포평야의 낮은 등성이와 들판을 누비다 계양산(395m), 가현산(215m) 지나 강화도 앞 문수산성에서 끝맺는다.

금북정맥(錦北正脈)

금강의 북쪽 울타리이다. 한남정맥과 헤어진후 칠현산(516m), 안성 서운산, 천안 흑성산(519m), 아산 광덕산(699m), 청양 일월산(560m), 예산 수덕산(495m)을 지난다. 산줄기는 예산 가야산(678m)에서 멈칫거리다 성왕산(252m), 백화산(284m)를 거쳐 태안반도로 들어 반도의 끝 안흥진에서 끝을 맺는다.

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이다. 장수 영취산(1,076m)에서 시작하여 장안산(1,237m) 수분현(530m) 팔공산(1,151m), 임실 성수산(1,059m), 진안 마이산(667m), 진안 부귀산(806m)에서 끝난다.

금남정맥(錦南正脈)

전주의 동쪽 마이산(667m)에서 북으로 치달아 대둔산(878m), 계룡산(828m)을 거친후 서쪽으로 망월산을 지나 부소산 조룡대에서 끝난다. 금강의 온전한 남쪽 울타리를 이루지 못하는 이 산줄기는 운장산 지나 왕사봉에서 남당산-까치봉-천호봉-미력산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호남정맥(湖南正脈)

낙남정맥과 함께 우리나라 남부해안문화권을 구획하는 의미있는 경계선이다. 정맥의 동쪽은 섬진강, 서쪽은 만경강 동진강 영산강 탐진강이다. 금남호남정맥에서 갈래친후 강진 만덕산(762m)을 처음 만나고 이후 내장산(763m), 추월산(729m), 무등산(1,187m), 제암산(779m), 조계산(884m) 등 남도의 큰산을 지나 광양 백운산(1,218m)이 끝이다. 백운산에서 아쉬운 산자락의 여운은 백운산 남쪽을 달려 섬진강을 휘감으며 망덕산(197m)에서 비로소 끝난다.

월간 「사람과 산 」1999. 11월호 별책부록 <백두대간 종주 지도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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