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명<빈집> -유리감옥 25시간, 빈집 분양

【세종=코리아플러스】강경화 기자 = 소통이 없는 빈집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고독의 빈집을 소개하는 작품<빈집>, NA_MU의 움직임으로 보여진다.

“소통의 부재가 가져온 너무 많은 접속, 무수한 타인들과 상시 연결하려는 욕망, 가짜 소통. 빈 집에서 자신을 마주하다.”란 주제로 작품명 빈집(Empty Home)이 지난달 16일 오후 7시 30분 세종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의미를 담아 개최됐다.

이 공연은 프로젝트 그룹 ‘NA_MU(나舞_나無)’가 주최·주관하고, 세종특별자치시, 여민락 세종문화재단, CHOI DANCE COMPANY, 학무회가 후원했다.

전통공연 연출·평론가인 제주국제대학교 조성빈 특임교수는 “폴 틸리히(Paul Johannes Tillich)의 외로움은 혼자 있는 고통이고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이다(Loneliness expresses the pain of being alone and solitude expresses the glory of being alone).”라는 말로 이 작품의 평을 대신했다.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으로 열린 소통만능의 시대. 항상, 어디에서든, 모두와 연결될 수 있는 시대의 시작은 고독과 고립의 종언을 알리는 듯했다. 이제 나는 너와, 그와, 모두와 늘 함께한다. 나 거기 있고, 너 여기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공허하다. 온갖 위트 있는 유행어와 ‘좋아요’ 버튼, 신상 이모지(emoji)로 소통을 하지만, 그 여운은 찰나에 사라지고 만다. 정처없이, 또 다른 소통을 시도하는 키보드 위의 손가락. 우리가 그토록 원하던 고독의 종말은 정말 이루어졌나.

그런데 우리는 왜 여전히 텅 빈 집에 혼자 있을까. 【빈 집】은 소통이라는 목표 아래 시도되는 접속의 부작용과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새삼스러운 문제 제기다. 온라인상의 소통은 대개 덧없다. 결핍된 욕망이 주는 공허함은 찰나의 소통으로 해소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수많은 박탈감과 공허함의 근원은 그런 무의미한 소통과 관계의 강박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빈 집】은 고립되기 싫어 내었던 온라인상의 우리 손을 거두고, 빈 집에 덩그러니 남겨진 진짜 우리 자신에게 그 손을 내어보길 권유한다. 자신과의 조용한 소통은 결국엔 결핍된 욕망의 출처를 아는 방법이다. 그런 점에서 의도치 않게 ‘빈 집’에 놓인 우리는, 의의로 좋은 기회를 가진 셈이다. 여전히 미분양된 빈 집들이 많다. 이제는 다른 이의 집에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기보다, 빈 집에 방치했던 자신과 대화를 나누어야 할 때다.

“빈 집은 소통이 없는 물리적인 공간과 심리적인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단편적인 정보에서부터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들이 토로되는 현상을 바라보며 생긴 여러 질문에서 작업이 출발했다.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의 발달로 커뮤니티의 접근성이 개선되며 온라인 커뮤니티가 확대된 것을 차치하고라도 업로드 되는 의 양과 내용을 보면서 ‘이들은 왜 이곳에서 때로는 감정적인 때로는 사적인 이야기를 무분별하게 쏟아내는 것일까?’ 궁금했다.

자신의 에 공감해준 댓에 답변을 달면서 마치 위로에 대한 보상을 하는 모습은 너무 많은 접속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우리의 이야기로 여겨졌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접속에 빠져 있는 것일까? 접속에 빠져든 우리의 손가락은 개별적인 주체의 행위일까? SNS나 카페 등 여러 플랫폼을 접속하는 일이 무수한 타인들과 항상 연결되어 있다는 안도감을 주는 것은 아닐까? 물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소통을 온라인 속에서 찾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소통이 부재한 빈 집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질문과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빈 집은 진정한 소통이 없는 공간, 온라인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소통은 인간으로 하여금 사회적 존재로서 살아가게 만드는 도구가 된다. 일반적으로 소통은 사람들끼리 서로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의 정보를 주고받는 것으로 ‘과정’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정지된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진행되는 나와 상대방이 서로 연결되는 일련의 행위이다. 그 과정은 주체인 ‘나’와 수신자에 의한 상호작용에서 가능하다.

현대인들은 각각의 이유로 온라인 공간에 찾아든다. 때로는 상대와의 연결을 통해 세상과 관계 맺고 있다고 여긴다. 자신의 일상이나 감정을 이나 사진으로 노출하고 세상과 자신은 연결되어 있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거기에 상대방의 피드백은 자신의 의견이나 감정을 상대방이 공유하고 있다고 느끼게 만든다.

그러나 속도와 편의성을 중시함에 따라 소통의 언어가 바뀌고 민첩한 사고와 대처를 필요로 하는 온라인 환경에서 진정한 의사소통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의사소통은 충분한 시간과 생각 안에서 가능한데 반해 온라인상은 네트워크 특징에 따라 얼마나 빨리 정보를 입력하고 처리하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대화가 빈약하고 무신경해지며 단편적이고 때로는 감정위주의 대화로 후퇴했다.

쉽게 연결되기 때문에 그 무게 또한 가볍다. 과연 무의미한 형식적인 답변으로 상대방과 연결되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특히, 형체가 없는 온라인 소통은 화면에서 이 사라지는 순간 의식 속에서도 사라지기 때문에 더 이상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다. 오로지 활자로서만 존재한다. 공허한 독백이 난무한 무의미한 접속 공간. 소통을 위해 찾아든 그 곳 역시, 빈 집이다.

“빈 집은 소통이 없는 빈 집(현상), 다른 하나는 자신의 내면 소리를 듣기 위한 빈 집(의도)으로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빈 집】은 공허함에서 시작된 접속이 자신의 결핍을 채워주기 보다는 다른 양상의 공허함으로 나타난다는 전제하에 출발한다. 그리고 또 다른 빈 집, ‘침묵과 고독’의 집을 소개한다. 소통은 송수신자가 전제되어야한다. 여기서 송신의 주체는 ‘나’이며 수신자는 타인이 될 수도 있지만 ‘자신’이 될 수도 있다. 수신자가 남이 아닌 내가 되어 내면과 대화할 것을 권고한다. 흔히 고독과 침묵은 부정적인 단어로 인식한다. 스스로를 고립시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침묵은 단순히 말이나 소리의 부재가 아니다. 말이나 소리의 반대도 아니다. 재잘거림 후에 남은 공백도 아니다. 침묵은 자신을 이해하는 시간이고 사랑하는 시간이며 다시 바라보는 희망의 시간이다.

언어는 시간과 인내에 의해 사고 체계를 갖는다. 민첩하고 빠른 사고를 요구하는 온라인은 시간과 인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흐름만이 있을 뿐이다. 이제는 타인과의 관계 맺기를 통해 공허함을 채우기보다 자신을 온전히 바라봐야한다. 보다 시간과 인내를 갖고 자신을 정비해 조금은 느린 언어로 세상과 관계 맺을 필요가 있다. 진정한 소통의 대안으로 고독의 빈집을 분양해본다.

“빈 집의 무대는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비어있다.”

빈 집은 많은 이미지가 담겨있다.(소리없는 25시간, 소리없는 아우성, 우리는 결국 만나지 못했다, 빈집을 분양합니다.) 그러나 내러티브가 없다. 각 장을 나누어 작품을 구성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 빈 집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이미지를 혼합하거나 반복을 통한 강조로써 작품의 흐름을 만들었다.

일상의 다양한 동작들을 심리적인 여러 측면과 연결하여 작품 속에 배치하여 가득 차 있으나 한 켠은 비웠고, 비웠으나 가득 찬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이에 관람자는 전체 혹은 부분적인 것을 선택하고 조합함으로써 인상과 감각으로 작품을 접할 수 있도록 작업했다. 플롯 또한 관객의 의식과 감각의 흐름에 의해 생성되는 구조이다. 첫 장면을 작품의 중간부터 시작하여도, 혹은 첫 장면, 혹은 마지막 장면부터 시작하여도 관계없다. 각자의 흐름으로 감각하길 권유한다.

NA_MU(나舞_나無)는 ‘예술이 개인을 변화시킬 수 있다.

개개인이 변하면 사회가 변할 수 있다. 예술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하에 2011년 설립한 움직임 그룹이다. 인간, 사회현상에 대한 탐구를 춤(움직임)으로 확장하고자 해왔으며 공간(Space)과의 관계 및 장소 특정적(Site-Specific)작업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한국무용 전공자로 공주대 무용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전문사 과정, 공주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무용교육을 수료한 NA_MU 이윤희 대표는 전통적인 작업에 머무는 것이 아닌, 동시대성(contempoary)을 반하여 타 장르와의 콜라보레이션, 해체, 변형, 비틀기 등 다양한 실험을 시도한다. 공연작으로는 <도시의 여행자들>, , <제목 없는 작품>, 프로젝트 <골목유랑기>, 등이 있다. 또한 움직임을 중심으로 한 통합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개발ㆍ진행했다. 대표적인 교육프로그램으로 세종시 연동면에서 진행한 생태예술교육<놀자, 날자, 시끌벅적 공화국>, 지역자원을 교육제제로 활용한<춤추는 복향제 씨, 조치원에 살다(커뮤니티 댄스)> 등이 있다.

이 대표는 “작업은 언제나 어렵습니다. 【빈 집】을 작업하는 과정 또한 쉽지 않았습니다. 그 내내 어려움과 마주하면서 스스로 빈 집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습니다. 가끔은 보고 싶지 않은 단점을 바라보게 되고 가끔은 그 단점을 나름의 치유 언어로 합리화하기도 하며 그렇게 【빈 집】을 비우기도 채우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작품의 여러 이미지들이 제 모습에 투되기도 하여 내가 【빈 집】을 만들고 있는 것인지, 【빈 집】이 나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인지 바보가 된 것 같은 불안한 상황에 놓일 때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또 성장합니다. 작품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삶의 길을 걸어 나가는 사람으로서 배워갑니다.”라고 밝혔다.

또 “작업을 하는 과정이 하나의 목적이 되기보다, 진정한 의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업을 하는 사람에서부터 작업의 결과물을 만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믿고 싶은 진실을 바라보고 보편화된 해석에 머물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상상과 해석, 고유한 의미를 만드는 디딤돌이 되기를 바라며 작업을 잇습니다. 【빈 집】을 마주한 여러분들은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그 궁금증이 이 작업의 마무리가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 각자의 의미와 신념이 곧 이 작업의 끝입니다. 때문에 아무도 이 작품의 결말은 알지 못합니다. 오로지 자신만 알 뿐입니다. 그 여정에 이 작품이 작게나마 함께 했기를 바래봅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작업은 결코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여러 춤 벗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춤으로 만나, 춤으로 대화하고, 오로지 춤이라는 알 수 없는 형상 안에 놓인 벗들입니다. 때문에 각자의 어려움은 뒤로 하고 늦은 새벽 시간까지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춤 앞에서 사사로운 이익과 감정은 잠시 내려놓고, 숨 막힐 듯 생각과 움직임을 풀어놓기도, 고요의 정적을 만들기도 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작업하는데 많은 인내가 필요했음에도 묵묵하게 기다려주고 느슨하게 말없이 견뎌줬습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그들이, 벗이기에 춤이기에 가능했습니다. 작업에 다양한 옷을 입혀주신 여러 스텝님들, 항상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는 스승님들, 작품을 무대에 실현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신 세종시문화재단 관계자분들,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빈 집】의 결말을 맺어준 진정한 창작자인 관객분들게 감사하다.”라고 인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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