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전 부여군 부군수 나 창호

#1.언젠가 문예잡지 편집회의를 할 때 여류시인이 강원도에서 있었던 실화라며 들려준 이야기다. 어느 해인가 강원도에 눈이 많이 오고 몹시 추운 날이었다. 눈밭에 오토바이와 사람이 쓰러져있다는 신고를 받고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해보니, 오토바이운전자의 고개가 180도 돌아간 채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었다. 웃옷의 단추로 보아 얼굴이 보여야하는데 얼굴은 눈 속에 파묻혀 있고 뒤통수가 보였던 것이다. 구조대원은 얼굴을 바르게 한다며 고개를 휙 잡아 돌렸는데, 목뼈가 꺾여 즉사했다고 한다. 오토바이운전자가 매서운 바람을 막으려고 웃옷을 반대로 입고 운전하다 눈길에 미끄러져 당한 사고였는데, 구조대원이 옷단추만 보고 착각해서 일으킨 끔찍한 비극이었다.

#2.중국 이야기다. 미모의 여자운전사가 44번 버스로 시골길을 운행한다. 어느 날, 운행 중에 태운 승객 3명이 깡패로 돌변해 여기사를 내리라고 위협해 숲속으로 끌고 간다. 이때 승객들은 모두 모르는 체 외면을 하는데 중년신사 한 사람이 저항한다. 하지만 그는 힘이 달려 깡패들에게 잔뜩 얻어맞고 상처만 입는다. 얼마 후 만신창이가 된 여기사와 흑심을 채운 깡패들이 버스로 돌아오는데, 여기사가 중년신사 보고 다짜고짜 내리라고 한다. 중년의 신사가 “나는 당신을 도우려고 했는데 왜 이러느냐?”고 항변하지만, 버스기사는 “당신이 내리지 않으면 절대 떠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렇게 되자 그동안 침묵하며 외면하던 승객들과 깡패가 합세해 중년신사를 버스에서 내리게 하고, 짐을 차창 밖으로 내던진다. 간신히 다른 차를 얻어 타고 가던 중년신사는 수십 길 낭떠러지로 추락한 버스사고 현장을 목격한다. 승객이 모두 사망한 사고버스는 그가 내린 44번 버스였다. 여자운전사가 그를 욕보인 깡패들과, 불의를 보고도 외면한 승객들을 저승길 동반자로 삼고, 고마운 중년신사는 살렸던 것이다. 죽음의 길로 함께 간 승객들은 여자운전사가 험한 일을 당하고도 자기책임을 다하는 훌륭한 사람이라고 착각했겠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그들은 중년신사와 힘을 합쳐 깡패들을 제압했어야 옳았다. 이 이야기는 실화라 하며 영화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3.그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고 어려서 많은 학대를 받았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자수성가했다. 이후 아들이 생겼고 인생의 목표였던 최고급 스포츠카를 구입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차를 손질하러 가다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 주변을 살펴봤다. 그런데 어린 아들이 스포츠카에 쇠못으로 낙서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성을 잃은 그는 손에 잡힌 공구로 아들의 손을 가차 없이 내리쳐 짓뭉개버렸고 아들은 결국 손을 절단해야 했다. 수술에서 깨어난 아들은 아버지에게 잘린 손으로 울며 빌었다. “아빠, 다시는 안 그럴게요. 용서해주세요.”집으로 돌아온 그날 저녁, 아버지는 차고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 그의 아들이 차에 새긴 낙서는 다름 아닌 “I love dady.(아빠 사랑해요.)”라는 글자였다.(나인문·나재필 저, ‘기자형제 신문 밖으로 떠나다’에서 옮김)유튜브에 떠도는 이야기라 하는데 아무래도 누군가가 꾸며낸 이야기 같다. 꾸며낸 이야기라 해도 슬프고, 실화라면 더 슬프다. 욱하며 분별력을 잃은 순간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 소중한 아들을 단지 비싼 차를 망가뜨리는 나쁜 놈으로 착각해 내린 오판의 결과는 비참했다. 아들도 차도 망가뜨리고, 죄책감에서 본인도 목숨을 끊었다.

#4.정부가 남북군사합의를 하고 벌이는 일들을 보면 안보에 대한 불안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먼저 대규모 군사훈련 및 무력증강 문제, 봉쇄·차단 및 항행방해 문제, 상대방에 대한 정찰행위중지 문제를 남북군사공동위를 구성해서 다룬다는데, 전문가들은 북한의 시비로 군사훈련은 물론 군사장비의 현대화조차도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한다.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상호 비행금지 영역과, 서해에는 공동수역을 설정했는데, 방어해야하는 우리에게 아주 불리하다는 것이다. 비행훈련은 물론 정찰비행도 할 수 없고, 서해에서는 해상훈련과 포사격 연습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수도권 방어선인 GP의 철수도 우려한다. 적 동태 파악도 어렵지만, 북측의 GP수가 훨씬 많은 데도 비율이 아닌 단순 동수로 철수한 건 문제라는 것이다. 이외에도 내년 6월까지 한강하구의 철책선 8.4km를 철거하고, 2021년까지 해안이나 강안의 철책선 284km를 철거한다는데, 이렇게 되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일원 등에 대한 적의 침투가 용이해진다는 것이다. 또, 강원도 철원의 화살머리고지에 지뢰제거 후 개설한 4차선 규모의 유해발굴용 도로는 유사시 적 탱크부대의 진입로가 되고, 경기도 포천지역 등의 국도에 설치된 탱크방어벽을 해체하는 것은 적 탱크를 저지하기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많은 사람들은 적 침투로를 열어준 것 아니냐며 걱정들이 크다.

남북 간의 관계개선도 중요하지만, 이는 확고한 국가안보체제 하에서 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또 CVID에 의한 북핵폐기가 본질인데도 비핵화가 전혀 진전되지 않은 상황에서 평화분위기 조성에 너무 과속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물론 정부가 북이 도발하지 못한다는 확신 하에 추진하는 일이라고 믿어야 하겠지만, 만약이라도 착각이나 오판이 있다면 그 후유증이 상상외로 클 것이므로 두렵지 않을 수 없다. 대제국을 건설했던 로마인들은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격언을 남겼고,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의 장군 사마양저는 ‘천하가 비록 편안해도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기가 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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