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6일

【세종=코리아플러스】장영래 기자 = 주일말씀

1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2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3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4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5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6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7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8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9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10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11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12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

13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리로다

14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15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에서 섬기리로다

16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17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18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19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20아셀에게서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수라상을 차리리로다

21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22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23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24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25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26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27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28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29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30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의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31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

32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33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
 

[고고학으로 읽는 성서-(2) 예루살렘을 향하여] 유다 산지

다윗의 활동무대

유다 산지는 해발 1000m 높이와 연평균 강우량이 최대 900㎜나 되는 숲이 우거진 푸른 산지다.

이 지역이 유다 산지로 불리게 된 것은 구약성경 여호수아 20∼21장에 유다 지파에게 배정된 지역으로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유다 지파는 남방 혹은 네게브 지역과 더불어 가나안 남쪽 산지로 내려가 가나안 족속과 싸워 그들을 내쫓고 이곳에 터전을 삼았다(삿 1:9).

그러나 유다 지파는 철 병거를 갖고 있던 골짜기의 블레셋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했다.

유다 산지에는 예루살렘을 비롯한 베들레헴과 헤브론 등 성서에 자주 등장하는 장소들이 있으며 유다 지파의 후손 다윗의 동네이기도 하다.

이번 연재에서 우리는 먼저 헤브론을 살펴보려고 한다.

◇ 헤브론
 

헤브론은 유다 산지의 가장 중심지라 부를 수 있는 지역으로,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30㎞ 떨어져 있다.

해발 930m 높이의 언덕에 형성된 이 도시는 팔레스타인 자치구역 도시들 중 가자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히브리어로 헤브론의 어원은 ‘동료’ 혹은 ‘친구’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데, 아랍어 이름인 엘-칼릴(el-Khalil) 역시 ‘신의 친구’라는 뜻을 보여준다.

헤브론은 고대부터 이스라엘 민족과 관련해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지역이고, 무엇보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막벨라굴과 관련해 오늘날의 유대인에게는 예루살렘 다음으로 가장 큰 성지다.

안타까운 것은 헤브론이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구역이기 때문에 발굴을 할 수 없어 자료들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예루살렘의 유물 암시장에는 헤브론에서 왔다는 많은 유물을 발견할 수 있지만 사실 그 출처를 정확히 밝힐 수가 없다.

민수기 13장 22절에 의하면 헤브론은 이집트의 소안보다 7년 앞서 즉 주전 1720년경 도시가 건설되었다.

헤브론의 텔 에르-레우메이다(Tell er-Reumeidah)에서는 주전 3000년경부터 사람이 거주한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특히 주전 18세기 번성한 도시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헤브론의 가나안 이름은 기럇아르바로 이스라엘의 땅 분배 당시 유다 지파의 갈렙에게 배분 되었다(수 14:13∼14).

이 도시는 이스라엘 민족과 싸우기 위해 연합한 가나안의 다섯 왕들 중 하나인 아낙이 통치하던 도시였는데 가나안 땅의 주요 도시 중 하나였다(수 10장).

◇ 족장들의 무덤

무엇보다도 헤브론이 우리에게 익숙한 이유는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정착을 시작한 곳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창세기 23장은 아브라함이 그의 아내 사라가 127세에 죽자 헤브론에 살고 있던 헷족속 에브론에게 은 400세겔을 치루고 막벨라 밭과 동굴을 사들인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이후 아브라함을 비롯한 그의 아들 이삭과 리브가, 손자 야곱과 아내 레아도 묻히는 가족 매장지가 되었다.

유대인 전통에 의하면 막벨라 동굴에는 아담과 하와도 매장되었다.

이러한 유대적 전통은 헤브론을 중요한 종교적 장소로 만들었다.

예루살렘의 성전을 보수하고 화려하게 장식한 헤롯은 또 다른 유대인들의 성지였던 헤브론에 거대한 건물을 지었다.

전통적으로 알려졌던 막벨라 동굴 위에는 예루살렘 성전과 유사한 건축물이 들어섰다.

돌을 반듯하게 깎아 만든 벽돌을 쌓아 건물을 세웠는데 가장 긴 벽돌의 경우 길이는 7m가 넘었으며 두께도 2m나 되었다.

헤롯은 천장을 덮지는 않은 채 건물을 지었는데 벽 높이만 12m에 달했다.

벽면 전체는 오목한 면과 볼록한 면을 번갈아 있게 하여 멀리서 보면 마치 기둥이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로마시대 유대인들은 이곳에 회당을 지었다.

그러나 비잔틴시대 들어와 족장들의 무덤 위에는 교회가 지어졌다.

유대인들은 더 이상 이곳을 방문하여 기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638년 무슬림인들이 헤브론을 정복하면서 교회는 허물어졌다.

그 자리에 모스크사원이 들어섰다.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을 성인으로 생각하는 무슬림에게 막벨라 동굴은 여전히 성지였다.

십자군 시대 막벨라는 다시 교회로 사용되었고 현재 남아 있는 지붕은 십자군들이 만든 것이다.

그러나 무슬림의 손에 헤브론이 넘어가면서 모스크로 탈바꿈했으며 내부의 모습은 주로 8∼15세기 여러 시대에 걸쳐 갖추어진 것이다.

◇ 종교적, 정치적 중요성

사울이 죽자 여호와는 다윗에게 유다 산지의 헤브론으로 올라가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삼하 2:1∼4).

다윗은 헤브론에서 7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린 후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고(삼하 5:1∼3)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스스로 왕위에 오르면서 종교적, 정치적 정당성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는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헤브론에서 왕위에 올랐으나(삼하 145:10) 성공하지는 못했다.

헤브론은 이후 남왕국 유다의 경제적 주요 도시가 되었으며 유다 지파의 여섯 도피성 중 하나로(대상 6: 57) 중심지 역할을 했다.

주전 8∼7세기 남왕국 유다의 발견물 중에는 히스기야 전후 시대에 사용한 ‘라멜렉(lmlk·왕에게 속함)’이라 불리는 항아리들이 있다.

이 항아리들은 기름이나 포도주 등을 저장했던 것들로 4개의 손잡이가 있는데 손잡이에는 인장이 찍혀 있다.

인장의 가운데는 고대 중동지역 왕을 상징하는 두 날개를 펴고 있는 원반이나 4개의 날개를 펴고 있는 풍뎅이가 있고 위에는 라멜렉이라고 새겨져 있다.

인장의 아래에는 4개의 다른 장소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중에는 헤브론이 있다.

항아리는 왕을 위하여 포도주나 올리브기름 같은 조공품이나 세금을 담았던 것으로 헤브론을 비롯한 네 도시로 보내져 예루살렘으로 전송되었을 확률이 높다.

결국 헤브론이 유다 산지에 있어 행정적,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으로 중요한 도시였음을 알 수 있다.

헤브론은 주전 586년 바빌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무너지고 말았다.

비록 적은 숫자이기는 하나 유대인들은 그들의 성지를 버리지 않았다.

느헤미야 11장 25절에 의하면 기럇 아르바 즉 헤브론에는 일부 유다의 자손들이 살고 있었다.

헤브론은 유대인들에게 있어 종교적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신약시대에도 헤브론은 항상 유대인들의 거주지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헤롯의 막벨라 동굴을 다시 건설하기도 하였다.

헤브론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은 로마와 타협하지 않았다.

도시는 주후 68∼70년, 그리고 주후 132∼135년 로마에 대항하는 유대인 반란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비잔틴시대를 지나 중세시대에도 이곳은 유대인의 성지로 지켜졌다.

비잔틴 시대에는 유대 회당이 지어지기도 했다.

1929년 아랍인과 유대인 사이의 싸움에서 67명의 유대인이 살해되는 사건으로 유대인들은 잠시 동안 헤브론을 떠났었다.

그러나 1967년 6일 전쟁 이후 아랍인으로 가득찬 헤브론에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거주지를 확보했다.

현재 헤브론에는 약 16만 명의 무슬림 인들이 살고 있으며 유대인 특별 거주 지역에 900명이 아니 되는 유대인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까지도 아랍인과 유대인 간의 분쟁이 끊이지 않는 장소이기도 하다.

◇공동 집필

임미영 박사 <평촌이레교회 협동목사, 서울신학대학교 한신대학교 장신대학교 강사>

김진산 박사 <터치바이블 대표, 서울신학대학교 한세대학교 강사>

미국, 유네스코 공식 탈퇴 "유네스코, 반 이스라엘 편향적" 등록 2019-01-01 19:37:50

[워싱턴DC=AP/뉴시스] 미국이 이스라엘에 이어 지난해 12월31일자(현지시간)로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탈퇴했다.

미국은 유네스코가 반(反)이스라엘 편향적임을 내세워 2017년 10월에 탈퇴를 통지한 바 있어 2018년 말이 탈퇴 시기였다.

미국의 탈퇴는 앞서 유네스코가 2017년 7월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헤브론 구시가를 세계유산에 올리자 이스라엘이 탈퇴를 선언하면서 비롯됐다.

사진은 2017년 11월4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제39차 총회 모습. 2019.1.1.

[출처] 미국, 유네스코 공식 탈퇴 "유네스코, 반 이스라엘 편향적" (예수님을 따르는 아가페목장) |작성자 돌쇠

◇ 헤브론(B)(Hebron)
=> 도피성 동쪽 : 골란, 길르앗 라못, 베셀 / 서쪽 : 게데스, 세겜, 헤브론 뜻: 연합

[1] 예루살렘 서남 30km 지점에 있는 고도.
(1) 세계에서 제일 먼저 건설한 도시중의 하나이며 애굽의 유명한 소안보다도 7년이나 먼저 건설되었고 당시의 주민은 아낙 자손이었다. (민13:22).

(2) 6 도피성중의 하나요. 유대인의 거룩한 성중의 하나이며 예이름은 기럇아르바여요. 현재는 엘칼릴(친구)이다(수20:7,15:13,삿1:10).

(3) 이곳에 있는 막벨라 굴은 사라 아브라함 이삭 리브가 레아 야곱 등을 장사한 곳이다.

(4) 족장사에 보면 이삭에게는 브엘세바, 아브라함은 헤브론이 관계가 깊다 (창13,18:1).

(5) 여호수아가 이 성을 취하여 일부는 갈렙에게 일부는 레위 지파의 아들 아론에게 주었다(수10:36,15:54,21:10-12).

(6) 다윗은 즉위하여 이곳을 수도로 정하고 통치하였다(삼하2:11).

(7) 압살롬은 이 성에서 반역의 봉화를 들었다(삼하15:7).

(8) 르호보암은 이곳에서 15요새중의 하나로 건축하였다(대하11:10).

(9) 모세가 보낸 정탐군이 이 헤브론에 있는 에스골 골짜기에서 굉장한 포도 한송이를 따서 2인이 메고 돌아왔다(민13:23).

(10) 해발 1013미터의 고지대로서 포도의 특산지이며 바벨론 포로 이후에 다시 옛 이름으로 건축하였다.

[2] 아셀지파 경내에 있는 성인데 압돈이라고도 부른다(수19:28,21:30).

(한국컴퓨터선교회제공 / Copyrightⓒ 1999-2001 K.C.M All webmaster@kcm.co.kr)

◇헤브론 최근 수정 시각: 2018-09-16 06:07:45
분류•도시•팔레스타인의 도시

1. 개요[편집]아랍어: الخليل (Al-Khalil)히브리어: חברון영어: Hebron

중동 요르단강 서안지구 남부에 있는 도시.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30km 거리에 위치해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구 내의 최대 도시이다. 인구 215,000명(2016년).

2. 자연[편집]해발 900m의 고지대에 위치해 있으며 지중해성 기후를 보인다.

3. 역사[편집]3.1. '헤브론, 알칼릴의 옛 도시'[편집]

'헤브론, 알칼릴의 옛 도시'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2017년 등재되었다.

맘루크 왕조 때 건설된 도시로 가장 유명한 것은 이브라힘 모스크이다.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가족 무덤으로 창세기 23장 9절에서 20절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의 매장을 위해 헷 족속 에브론으로부터 400세겔을 주고 매입한 동굴이다.

이곳에는 사라를 비롯해 아브라함, 이삭, 리브가, 레아, 야곱이 매장되었고 족장들의 무덤이라고 불린다.

1세기주터 보호하기 위해 도시가 지어졌고 14세기 맘루크 왕조 때 현재의 모스크가 지어졌다. 아브라함계 종교의 중요한 순례지이다.

족장들의 무덤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논의 때 이스라엘이 여러가지 방법을 쓰면서 이스라엘 유적으로 등재하려 노력했지만 당연하게도 현재 팔레스타인 지역이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의 유적으로 등재되었다.

이에 분노한 이스라엘은 반유대주의가 팽배하다는 이유로 유네스코를 탈퇴하였다.

4. 기타[편집]

팔레스타인 정부가 통치하는 서쪽의 H1과 이스라엘이 관리하는 동쪽의 H2로 나뉘어져 있으며 대표적인 관광지인 패트리아크 동굴은 H2에 있다.

얼마 안되는 관광업, 제조업으로 먹고 사는 지역으로 팔레스타인 도시 중에서는 가장 발달된 편에 속하지만 한편으로는 가난한 지역이기도 하다.

◇ 헤브론 (Hebron)

(출처 : 김환기/크리스찬리뷰)

1947년 11월 29일 유엔은 팔레스타인에 분리 국가를 명령하였으나, 당시 아랍국가들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이듬해인 1948년 5월 이스라엘은 단독으로 국가를 세웠다.

이에 반발한 주변 아랍국들은 1973년까지 이스라엘과 계속된 4차의 중동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아랍국가는 유엔이 지정한 땅마저 이스라엘에게 빼앗겼다.

특별히 이스라엘은 1967년 6일 전쟁으로 알려진 제3차 중동전쟁 이후 가자지구와 요단강 서안(West Bank), 동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오늘까지 돌려주지 않고 있다.

이후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정치 조직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출범하여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부단한 노력한 결과 1974년 유엔에서 PLO는 ‘옵서버 단체’로 인정받게 되고, 2012년 11월 29일 팔레스타인이 유엔 총회에서 '옵서버 국가'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유엔 총회는 팔레스타인의 지위를 ‘참관국’으로 격상한다는 내용의 결의 안을 표결에 부쳐, 미국과 이스라엘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찬성 138표, 반대 9표, 기권 41표로 통과시켰다.

유엔이 팔레스타인을 유대국가와 아랍국가로 분할한다는 계획을 승인한지 65년 만의 일이다.

이제 팔레스타인이 국제사회에서 사실상 국가로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앞으로 팔레스타인은 ‘단체가 아닌 국가’의 지위를 가지고 이스라엘과 협상할 것이다.

◇ 헤브론 (Hebron)

헤브론은 요단강 서안지역의 중심 도시이다. 이곳은 팔레스타인 자치구역이지만 출입은 이스라엘이 통제하고 있다.

베들레헴에서 이곳까지는 약 20km 정도 된다. 헤브론 입구 검문소에 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검문하고 있었다.

택시기사는 관광객을 태운 택시는 통과하지만, 팔레스타인이 운전하는 빈 택시는 들어 갈 수 없다고 한다.

헤브론은 성경에 나오는 도시 중 가장 오래된 도시들 가운데 하나이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다윗과 관련되어 있어, 유대인들에게는 예루살렘 다음으로 중요한 성지이며 조상들의 영원한 고향이다.

‘헤브론’이라는 이름은 서부 셈족어에서 유래하는 어원을 가지고 있는데, 헤브론의 철자 “Hebron'에서 각 음절 ‘hbr'은 ‘동료’, ‘결합’, ‘친구’ 라는 뜻의 어원을 가지고 있다.

아랍인들은 헤브론을 ‘아브라함 알-칼리’(Ibrahim al-Khalil)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친구 아브라함’을 의미한다.

이슬람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그의 친구로 선택하셨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인지 막벨라 동굴 입구에 ‘아브라함의 모스크’라는 쓴 안내판이 서 있다.

◇ 아브라함과 헤브론

족장들의 도시인 헤브론의 역사는 이집트에 내려갔던 아브라함이 장막을 옮겨, 해발 950m의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거하므로 시작되었다. (창 13:18~33)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는 헤브론에서 살다가 숨을 거두었다.

이때 아브라함은 사라를 매장할 땅이 없어 헤브론의 원주민에게서 은 400세겔의 비싼 값을 주고 샀다.(창 23:16-18) 아브라함이 사라의 매장지로 산 땅은 헤브론의 ‘막벨라 동굴’이었다.

▲아브라함과 사라ㆍ이삭과 리브가 그리고 야곱과 레아 이렇게 이스라엘의 3대 족장이 묻혀있는 헤브론의 막벨라 동 굴.ⓒ김환기

고대 이스라엘의 매장지는 동굴무덤이었다.

이 막벨라 동굴은 그후 아브라함 일가의 가족묘지가 되었다.

아브라함도, 그 아들 이삭과 그의 부인 리브가도 그곳에 묻혔다.

또 야곱과 그의 부인 레아도 ‘막벨라 동굴’에 안장되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3대에 이르는 조상과 부인들이 묻혀 있는 헤브론의 ‘막벨라 동굴’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성지가 되었다.

◇ 다윗과 헤브론

이스라엘 역사에서 헤브론은 다윗 왕과 깊은 관련이 있다.

다윗왕이 기름부음을 받아 왕으로 임명되었다. (삼하 2:1~4)

다윗 왕이 유다 왕으로 7년 반 동안 헤브론에서 통치하였다.(삼하 5:44).

한편 유다 지파를 제외한 11 지파로 연합한 이스라엘 왕인 사울과 요나단을 비롯한 삼 형제가 길보아 전투에서 모두 죽는다.

사울의 넷째 아들인 ‘이스보셋’을 통하여 나라의 재건을 꿈꾼다. 하지만 그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수 있는 인물은 되지 못했다.

당숙인 ‘아브넬’이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었으나, ‘이스보셋’과 갈등으로 인하여 ‘아브넬’은 다윗에게 투항을 했다.

하지만 아브넬은 다윗의 오른팔인 요압 장군에 의하여 죽고, ‘이스보셋’은 ‘레갑과 바아나’에 암살당한다.

이들은 상을 받을 줄 알고 다윗에게 ‘이스보셋’의 목을 받쳤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들의 통치자 ‘이스보셋’을 배반하여 죽인 죄목을 들어 두 사람을 모두 사형에 처했다. (삼하 4장)

다윗은 통일왕국의 왕이 된 후 다윗은 수도를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겼다. 이후로 다윗은 그곳에서 33년간의 통치를 한다.

다윗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은 정치, 경제, 군사 그리고 종교의 중심 도시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러나 헤브론은 다윗에게 수난과 슬픔을 안겨준 곳이기도 하다.

다윗 왕에게 반란을 꾀한 셋째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던 곳도 헤브론이었다. (삼하 5:44)

◇헤롯왕과 헤브론

예수 탄생 당시 가나안 지역을 통치했던 헤롯왕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그들이 귀중하게 여기는 막벨라 동굴 위에 웅장한 건물을 지었다.

이 건물은 2천 년을 지내오는 동안 지금까지 한 번도 파괴되지 않아 헤롯왕이 건축한 많은 건물 가운데 유일하게 원형이 보존되어 있다.

길이 30m, 폭 22m, 높이 18m쯤인 건물의 안으로 들어가면 중앙에 아브라함과 사라의 무덤이 있고, 그 좌우에 각각 이삭과 리브가의 무덤, 야곱과 레아의 무덤이 있다.

물론 실제 무덤이 아닌 기념묘이다.

실제 무덤은 이 건물의 지하층 동굴 부분에 있지만 내려가 볼 수는 없다.

14세기 아랍인 통치자들이 무덤이 있는 지하 동굴 쪽으로 내려가는 입구를 폐쇄시킨 것이 오늘날까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원래 이곳은 아랍인들이 관리를 하였으나 6일 전쟁 후 반은 회당으로 나머지 반은 모스크로 사용하고 있다.

내가 도착한 시간은 무슬림의 기도시간이라 모스크로 들어갈 수 없었다.

나는 다른 입구로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토라(Torah)를 읽으며 기도에 열심이었다.

창살 넘어 아브라함의 무덤이 보였다.

이곳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무덤을 중심으로 ‘모스크와 회당’으로 갈라져 있다.

▲아브라함의 무덤 창살. 유대인 쪽에서는 창살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김환기

막벨라 동굴은 ‘회당과 모스크’가 함께 공존하는 세계 유일의 장소이다.

만약 같은 빌딩에 ‘모스크, 교회, 회당’이 함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 건물을 사용하는 '이맘와 신부와 랍비’가 함께 모였다.

이들은 헌금을 어떻게 하는지 서로 궁금했다.

‘이맘(Imam)’이 말을 꺼냈다.

“나는 원을 그린 후 주머니에 있는 돈을 하늘로 던져, 원 안에 떨어진 것을 하나님 것으로 생각하고 헌금합니다.”

가톨릭 ‘신부(Priest)’가 말을 이었다.

“나는 그 반대 입니다. 원 밖에 있는 것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이때 유대교‘랍비(Rabbi)’는 책망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비 성서적입니다. 성서적으로 합시다. 나는 돈을 던져서 하늘에 있는 것은 하나님 것, 땅에 떨어진 것은 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출처 : 김환기|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호주구세군 한인사역(Korean Ministry) 및 수용소 담당관(Chaplain, Detention Cen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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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yright ⓒ 크리스찬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입력: 2012/12/26 [11:34]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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