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와 민주화 운동가들이 갇혀 고통 받았던 감옥

【세종=코리아프러스】강경화 기자 = 한국사 사전 2 - 역사 사건 · 문화와 사상

한 제국 말기에 세운 뒤 1987년까지 운영되었던 형무소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 해방 이후에는 민주화 운동가들이 이곳에 갇혀 고통을 겪었다.

지금은 공원과 역사관으로 바뀌었다.

1908년 통감부는 대한 제국 정부에 요청해 한성 감옥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대한 제국의 사법권과 감옥 사무권을 빼앗아 이곳을 자신들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1910년 한일 강제 병합 이후에는 무단 통치(헌병 경찰 통치)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많아 감옥이 부족해졌다. 조선 총독부는 1912년에 ‘조선 감옥령’이라는 법을 만들어 감옥을 늘리거나 크게 짓기로 했다.

1912년에는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경성 감옥을 지었다.

한성 감옥은 고쳐서 크게 지었는데, 이름을 ‘서대문 감옥’으로 바꾸었다가 1923년에 다시 서대문 형무소로 정했다.

일제 강점기 동안 서대문 형무소에는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갇혀 고통을 받았다. 3 · 1 운동을 계획한 민족 대표들이 이곳에 갇혔으며, 만세 운동을 주도한 유관순도 여기에서 세상을 떠났다.

또한 일본 총독인 사이토를 저격한 강우규도 이곳에서 사형을 당했다.

서대문 형무소는 8 · 15 광복 이후에도 계속 운영되었다. 이름은 ‘서울 형무소’로 바뀌었으나 감옥으로 운영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독

재 정치를 비판하는 많은 민주화 운동가들이 이곳에 갇혀 고통을 당했다.

심화

1980년대 이후 서대문 형무소를 그대로 운영하는 데 대한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정부는 1987년에 경기도 의왕시에 새로운 교도소를 세워 옮겼고, 감옥 건물 중 일부와 사형장은 역사의 교훈을 전하기 위해 보존하기로 했다.

지금은 서대문 독립 공원과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이 만들어져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대문 형무소 - 독립운동가와 민주화 운동가들이 갇혀 고통받았던 감옥 (한국사 사전 2 - 역사 사건·문화와 사상, 2015. 2. 10., 책과함께어린이)

한편 이승만 대한민국 건국대통령은 독립정신 서문에서 ‘내가 오직 깊이 바라는 바는, 나라 안의 더욱 무식하고 천하며 어리석고 약한 형제자매들이 가장 많이 이 책에 관심을 가져서 스스로 흉기하려는 마음이 생겨 차차 행동하기를 시험하고, 남을 또한 인도하여 인심이 날마다 변하고 풍속이 고쳐져서, 아래에서부터 변화하여, 썩은 데서 싹이 나고 죽음에서 살아나가를 원하고 원하노라.’ 라고 밝혔다.

건국 4237(1904)년 6월 29일 한성감옥에서 죄수 이승만 기록 ‘독립정신’이 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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