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천년, 죽어 천년"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요즈음엔 추석이나 설 연휴가 되면 집에서 차례만 지내기보다는 잠깐이라도 짬을 내 여행을 떠나는 것이 새로운 명절 풍속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필자도 명절 끝에는 짬을 내서 가까운 명소를 찾곤 하는데 이번에는 아주 가까이에 있는 덕유산 향적봉을 찾았다. 겨울에 한 두 번은 꼭 찾는 향적봉이건만 언제와도 늘 감회가 새롭다. 더구나 눈이 오지 않아도 눈이 쌓인 길을 걸을 수 있는 맛과 주목과 구상나무를 만나는 즐거움이 크다.

 

주목(朱木)은 300년에서 500년을 한곳에서 곳곳하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난다. 그 옆에 구상나무 또한 1,000M 이상 고지대에서 자라는 나무로 나란히 위용을 자랑한다. 매번 오를 때마다 맞이하는 바람, 햇살, 구름결은 전혀 다른 기운으로 와 닺는다. 해발 1,614M에서 바라보는 파아란 하늘 또한 새롭다.

 

주목(朱木)은 말 그대로 나무껍질과 속살이 유난히 붉어 주목이라 불린다. 주목은 생장이 몹시 느린 반면, 나무 중에서 수명이 가장 길 뿐 아니라 목재로서의 수명도 길어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 고 불린다. 주목은 소나무와 달리 솔방울 대신 빨간 앵두 같은 열매가 달리고, 나무의 형체도 아름다워 최근에 정원수로 많이 심고 가꾸며 붉은빛의 목재 질 또한 치밀하면서도 단단하고 향기로 와 모든 재목 중에서 으뜸으로 여긴다. 인간은 기껏 살아야 일 백년 이건만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 할 정도로 장수하니 년 초에 향적봉을 찾을만한 충분한 의미가 있다 하겠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사람이 죽고 나면 비록 육신은 사라지지만 살아 생전 그 사람의 업적이나 행적은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주목은 죽어 목재로 쓰이는데 사람은 죽어 무엇을 남길까?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묘비에 “우물쭈물 살다 내 이럴 줄 알았지”라 했는데 남은 인생 ‘우물쭈물하다’ 짧은 인생 헛데이 보내고 싶지 않다는 경각심을 가져 본다.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 정현종

나는 가끔 후회 한다 /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 그때 그 사람이 / 그때 그 물건이 /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 들고 / 더 열심히 말을 걸고 /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 벙어리 처럼 / 귀머거리처럼 / 보내지는 않았는가 / 우두커니 처럼 / 더 열심히 그 순간을 /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 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 시인의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란 시를 보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과거를 돌아보며 ‘아, 그 때 일을 했어야 하는데……’ 혹은 ‘아, 그 때 그 사람을 잡았어야 하는데……’와 같은 후회를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다.

 

지나치고 나니 후회되는 것은 그것이 노다지였기에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 자신에 대한 질책이다. ‘더 열심히 파고들고 / 더 열심히 말을 걸고 /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 더 열심히 사랑할 걸……’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질책이다. 그런 질책은 ‘반 벙어리처럼 / 귀머거리처럼’ 혹은 ‘우두커니 처럼……’으로 자신이 허송세월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적시한다.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이기에 ‘더 열심히 그 순간을 /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모든 순간이’ 그냥 놔둔다고 저절로 노다지가 된다는 것은 아니다. 바로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 꽃봉오리’라는 사실이다.

 

지난 시절 놓쳤던 모든 것들이 지금 노다지로 변해 있을까. 아니다. 그 중 어느 것은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지금 노다지로 바뀌었을지 모른다. 따라서 모든 것은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노다지가 된다. 그러니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순간을 꽃봉오리처럼 생각한다면 우물쭈물 하지 않을 것이며 순간 순간 귀히 여 여긴다면 하고 있는 일에 혼신을 다 할 것이기에 주목처럼 세상에 흔적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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