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등면민 한자리 모여 화합과 미래 발전 다짐(1500여명의 황등민 참여)

황등면민의날을 기념하여 초대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익산시)
황등면민의날을 기념하여 초대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익산시)

【익산=코리아플러스】 김단오 기자 = 지난8일 해질 무렵 면민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며 황등면 풍물단을 선두로 마을별 특성을 살린 퍼포먼스와 시가행진으로 시작된 전야제는 익산시합창단의 공연과 화려한 막을 올렸다,

대회를 준비한 황등면 번영회 이태문 회장은 “어르신들에 대한 감사와 존경, 사회적 관심과 경로효친 의식을 높이고 어르신들의 활기찬 노후 생활과 무병장수를 기원한다!” 고 했으며 출향인과 관광객이 함께 참여하는 도농화합을 통해 지역경제를 보다 활성화하기 바란다며 개회선언을 했다. 개회 선언에 이어 줄다리기, 투호, 400m 남녀 혼성 이어 달리기, 윳놀이, 단체 줄넘기 등으로 면민들의 화합과 협동을 이끌었다.

황등면 출신인 가수 미소라 사진 (사진제공=지니뮤직)
황등면 출신인 가수 미소라 사진 (사진제공=지니뮤직)

또한, 면민의날을 기념하여 트로트 가수 김용임, 오로라, 각설이 등 유명 가수들이 초대 되었다. 특히, 황등면 출신으로 알려진 가수 미소라는 아버지 병간호를 위해 가수 일을 잠시 접어두었지만 황등면민의날 행사를 시작으로 다시 시작하는 신인의 마음으로 열심히 하겠다며 ‘아가야’. ‘쏜다’ 등 히트곡을 열창하며 황등면민들의 자긍심과 애향심을 높였다.

최미경 황등면 새마을부녀회장은 “지역민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어서 너무나 보람되고 영광스럽다!, 황등면민의날이 앞으로도 어르신들을 돌보고 아이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장이 되었음 한다!” 라며 기쁨과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다만, 황등 면민의날 행사 진행에도 몇 가지 아쉬움이 있어 개선이 필요해 보였다.

첫째, 아이들 대상 행사 부재로 인한 학부모 참여자들의 아쉬움을 자아냈다.

황등면민의날은 성인뿐 아니라 어린이 및 청소년도 같이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 행사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과 컨텐츠가 존재하지 않아 아이들과 같이 참여한 가족들의 불편함이 느껴졌다. 황등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체험 프로그램 진행자들을 초청하여 부스를 운영한다면 성인 뿐 아니라 아이들도 체험 활동에 참여할 수 있어 보다 많은 면민들이 만족해 할 것이다.

둘째, 면민의날 행사 혜택이 되도록 많은 지역 주민들에게 되돌아 갈 수 있어야 하겠다.

면민의날은 면민들에 의한 면민들을 위한 면민들의 행사가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자그마한 행사 선물도 지역 주민들이 직접 생산하는 지역특산물로 구매해서 진행하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더 나아가 황등면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을 제작하여 일부 행사 비용을 지불한다면 지역경제에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역주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해 보인다.

면민의날 행사장 부스 주변에 분리수거가 되지 않은 쓰레기와 음식물 찌꺼기가 여기저기에서 눈에 띄었다. 행사 진행을 위해 면민들이 자발적으로 많은 노력과 수고를 아끼지 않았지만 지정된 장소가 없었던 쓰레기 분리수거장과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인해 쾌적하고 안전하게 유지되어야 했던 행사장소가 그렇지 못해 아쉬움을 자아냈다.

제 13회 황등면민의날을 맞이하여 8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9일 행사 마무리까지 주민 모두가 참여하는 뜻깊은 행사로 발전해 가는 모습에 면민들 모두 즐거운 표정이 가득했다.

제 14회 면민의 날은 앞으로 2년이 남았다. 이번 행사에서 아쉬웠던 내용들이 보완 된다면 앞으로 더더욱 뜻깊고 의미 있는 면민의 날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황등면 역사 알아보기-

1. 황등면 명칭의 유래

황등면은 본래 함열현에 속한 곳으로 백제시대에는 감물아연이라 불렸고 신라 덕흥왕때 함열로 고쳐졌으며, 고려시대에 접어들면서 전주에 속했고, 이조에 들어 태종 9년 이웃 용안을 합해서 안열현이라 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황등면이라 불렀다고 한다,

2. 동련교회 및 황등교회 종의 유래

한편, 117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동련교회는 1902년 황등면 동련리에 세워졌으며, 설립자 백낙규는 원래 동학군의 소접주 출신으로 개혁과 개화에 꿈이 많은 사람으로 1904년 세례를 받고 이 교회에서는 최초의 세례교인이 되었다.

동련교회를 중심으로 1907년 서당조차 없었을 때 신식 학교인 계동학교(啓東學敎)를 세워 민족의식과 신학문 교육을 했다

1927년에는 황등교회가 동련교회로부타 분리 됐고. 황등교회 종은 1884년 미국 리스버그교회에서 제작한 종으로 현재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종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 종은 1950년 미국 유학중이던 황등교회 계일승 목사가 리스버그교회에 설치된 종이 황등교회에 꼭 필요하다고 기증을 요청하여 미국 리스버그 교회가 도착 운임 53불까지 더해서 기증한 것이다. 1950년 배편으로 오던 종은 6.25전쟁으로 일본에 머물다가 1951년 6월 10일 황등교회에 전해졌다. 황등교회는 이 종을 교회당 입구에 설치해서 예배시간 알림으로 사용해왔다. 이 종은 제작된지 136년을 맞은 지금까지 맑고 깊은 울림에 변함이 없어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이 종을 받은 황등교회와 황등지역사회는 작은 종에서 울리는 고운 소리를 들으면서 기독교정신에 따른 사랑을 다짐하고 있다.

3. 나훈아 ‘고향역’ 의 모티브가 된 황등역

황등역은 가수 나훈아가 부른 ‘고향역’의 모티부로, 작곡가 임종수 선생이 학생시절 황등역에서 기차를 타고 익산시(구,이리시)내에 있는 학교를 다니며 황등역 진입로의 코스모스를 보고 고향을 생각하며 만든 노래라고 한다.

노래가사의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 “입뿐이 곱뿐이 모두 나와 반겨주던” 가사처럼 시골이었으나 도,농 통합으로 (구)이리시와 익산군이 통합해 익산시가 되었다

4. 임금께 진상했다는 용산 찹쌀엿

용산 찹쌀엿은 유명한 특산물로서 용산리 대동마을에서 처음 만들기 시작한 이 엿은 첫째, 물이 매우 좋고 재료는 엿기름과 후추가루, 생강,깨, 박하 등을 쓰며 가락엿과 밤엿을 만들어 왔는데 그 맛이 뛰어나 조선시대에 임금님에게 진상했다는 말이 전해 왔다.

5. 조선의 궁술 복원에 앞장서온 ‘건덕정’

조선 순조왕 34년(1834)에 건덕정으로 칭하여 정사가 있었던 것으로 전하여지며, 고종 31년(1894) 전주에서 동학군이 패하고 관군에 의해 정사가 붕괴됐으나, 후대들의 노력으로 맥을 이어 궁술을 배우고자 건덕정을 복원했고, 현 건덕정은 회원수 70여명 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6. 황등면의 맛집 ‘황등비빔밥집’, 진미식당’, ‘한일식당’

백종원의 3대 천왕에 나온 황등비빔밥집을 필두로 황등에는 유명한 비빔밥집이 여럿 있다. 그 중에서도 3대가 맛을 이어오는 황등비빔밥집과 진미식당이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으며 비빔밥이 황등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는데 큰 기여를 했다. 지금도 주말이면 전국에서 황등의 ‘비빔밥’을 맛보고자 수많은 인파가 몰려오고 있다.

7. 황등면 경제를 책임졌던 ‘황등석재’

1970년~1980년대 면단위 행정구역에서 그랜저를 가장 많이 보유했던 곳이 바로 황등면이었다고 한다. 바로 석재산업 활성화에 따른 결과물이다. 예전부터 화강암 매장량이 많았던 곳이라 석재 산업이 발전했었고 황등의 석공예 기술자들은 세계적으로 그 기술력을 인정받았을 정도라고 한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도 황등에서 생산된 석재를 이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성이 맞지 않아 중국에서 대부분 수입하며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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