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세종=코리아플러스】 장래숙 논설위원.

【세종=코리아플러스】 장래숙 기자 = <엄마는 죽을 때 무슨 색 옷을 입고 싶어?>의 신소린 저자는 이 책에서 ‘효도 분량 포인트제’를 소개하고 있다.

부모가 병이 생겨 간병이 필요할 경우 자식이 해야 하지만 서로 바쁜 일상 속에서 간병을 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효도한 만큼 포인트를 쌓아 중간중간에 정산을 하게 하는 것이다. 간병이라는 문제를 다툼없이 가족이 풀어갈 수 있도록 제안한 것일 것이다. '효'에 대한 변화된 시대적 흐름을 알 수 있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옛말이 있다. 한없이 베풀고 아낌없이 나눠 주는 사랑이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이다. 부모는 가시고기같은 헌신적인 자식사랑으로 일생을 보낸다. 자식들만은 당신같이 고생하지 말고 잘 살아야 한다는 무한 사랑이 시대가 바뀌었다고 자식에 대한 사랑이 식은 것은 아니겠지만 이러한 부모 자식관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어느 부모라도 자식에게 돌려받을 것을 생각하고 희생한 부모는 없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부모에게 자식은 너무나 허망함을 안겨 주고 있다. 그러한 삶의 방식이 과연 옳았던가 하는 후회같은 자성을 갖게 하고 자기 삶의 방식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게 한다. 언론에서 ‘40대 아들 10년간 치매 노부 살해수 자살...’, ‘70대 오랫동안 치매를 앓아 온 아내를 돌봐왔던 노부부가 집에서 함께 숨진 채 발견’, ‘치매 아내 살해하고 자살시도 70대...’등 가슴 아픈 기사가 잇따르고 있다. 부모의 사랑과 상관없이 간병은 가족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올해 5월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KOFRUM)에 따르면, 중년남녀의 우울증상 보유율은 가족 중 치매 환자가 있는 사람에서 4.4%로, 없는 사람(1.9%)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노인은 빠르게 변화하는 삶의 방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더욱이 의식은 변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타성 때문에 갈등한다. 삶의 방식이 변해도 자식에 대한 애정은 달라지지 않지만 “그래도 돈은 꼭 움켜잡고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한다”는 부모들이 많아진 것 또한 사실이다. “더 이상 자식만을 위해 살지 않겠다”는 노인정서가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식의 성공이 부모의 행복”이라는 인식도 사라지고 있다. 자식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요즘 부모들의 소망이 되고 있다.

엄격히 보면 자식도 남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관심을 표하거나 더욱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귀찮은 것으로 인식된다. 소위 잔소리일 뿐이다. 성인이 되었으면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식도 슬하의 자식’이란 말처럼 곁에 있을 때 자식이지, 출가하고 나면 남과 같다. 개성을 인정하고 침범해서는 안 될 영역이 있음을 지켜야 한다.  전통적 부모 자식 관계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야 없겠지만 가족구조와 가족관의 급격한 변화에 맞추어 우리 사회의 인식과 관습도 변화의 새 물꼬를 터야 한다. “자식이 이럴 수가 있나” 하고 섭섭함을 느낄 때가 있지만 그것도 늙으면 버려야 하는 상실의 일부분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선언했듯이 부모 또한 “내 노후는 나의 것”임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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