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명신

【서울=코리아플러스】 강경화 기자 = 5.16 직후 강원지사를  마치고 경북지사로 부임한 분이 박경원 씨였는데 백골병단 초대 연대장사령관 이었고 2대 사령관이 채 명신 장군 이었다.

진부령과 미시령이 갈라지는곳에 커다란 전적비가 있었다. 수십년 지나쳐도 내용을 알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 그것은 바로 백골병단 전적비 였습니다. 교회에서 전적지 답사차 처음으로 찾아갔다. 이름도 무시무시 했고  부대단위도 대단해 보였다. 그러나 실 병력은 800명 미만 이었다고 합니다.

적에게 위협을 주기위해 병단으로 이름을 붙였다. 이 부대의 2대 사령관인 채 명신 장군의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채 장군은  기독교 신자로서 신앙도 대단했다고 한다. 내가 사는 속초 등너머 인제에서 6.25 당시 유격부대장인 26세의  채명신 중령이 김 일성의 왼팔과 같은 인민군 중장  길 원팔과 그 일당을 필레 약수터 근처 민가에서 사로 집았다.

그 때  젹장 길 원팔로 부터  전쟁고아 한 명을 키워주도록  유언을 부탁 받았다. 부탁을 약속하자 채장 군으로 부터 권총과 실탄 한발을 빌려 자결했다. 적장의 양아들은 채 명신의 가족으로 편입됐고 그후 서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한양대 수학교수가 되었다. 성씨는 이씨로 개명된 것 같다. 그 분의 동료 한분이 한양대 교수였는데 저와 같이 몇 년간 과기대교수로 근무했다.

그 분이 채 명신 양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또 소문으로는 채 장군의 동생으로 주변에서 알려 지기도 했다. 어느 언론에선 성이 채씨 라고 보도한 적도 있습니다. 한양대 교수 였으니 적어도 성은 이씨가 맞는것 같다. 그 아들(혹은 동생)은  나중에 위암수술을 7번 받았으나 살아 남았고 그 비결은 맨발로 걷는 치료법 이었다. 그는 맨땅만 보면 구두와 양말을 벗어 들었다고 한다.

암에는 맨발이 최고 인것 같습니다. 우리도 백세시대에 암 수술 아무리 많이 받아도 겁내지 맙시다. 장수하면서 전도해 천당에서 좋은 친구 많이 만나야 한다. 이건 정말 진실이다!

 

저작권자 © 코리아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