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계도의 세상만사】 하나의 마음과 둘로 갈라진 마음
【장계도의 세상만사】 하나의 마음과 둘로 갈라진 마음
  • 장영래 기자(adjang7@gmail.com)
  • 승인 2020.10.11 14: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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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사람 ‘faith’ 지혜롭지 못한 삶‘doubt’
코리아플러스 논설고문, 미국 시카고 세계합기도회장

【장계도의 세상만사】 지혜로운 삶은 ‘faith’ 하나의 마음이다. 지혜롭지 않은 삶은 ‘doubt’ 둘로 갈라진 오염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죄다. 과녁을 빗나갔다는 말이고 또 그것은 하나에 적중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즉,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스승님은 어찌 그리 늘 평온하고 생기 차며 지혜롭습니까? 비결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요.” “비결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난 그저 앉고 싶으면 앉고 서고 싶으면 서고 갈 때는 가고 돌아오고 싶으면 되돌아오는 것뿐이네.”그러자 제자가 말했다. “스승님 그건 저도 할 수 있고 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랍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지, 사람들은 앉으면서 설 생각에 서면 갈 생각에 가면 벌써 돌아오고 있지.”불가에도 이런 대화가 있다. 한 수행승이 큰스님한테 도(道)가 뭐냐고 물었다. 큰스님 왈,“배고플 때 밥 먹고 피곤할 때 잠자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수행승이 되물었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큰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니지, 사람들은 밥 먹으면서 TV도 보고 또 다른 많은 생각을 하지. 그리고 잠자리에 들면 이 생각 저 생각에 업치락 뒤치락 하며 뜬눈으로 밤을 새는 사람도 많지. 그래서 수면제를 먹기도 하고..”하나에 집중한 채 한 번에 하나씩만 하는 일행삼매(一行三昧)가 불법(佛法)임을 수행승이 알아들었을까?

미국 제생들이 필자에게 물었다.“관장님은 은퇴할 나이에 평생 지금껏 합기도 지도 생활이 지루하지 않습니까? 일을 즐기는 비결이 무엇입니까?”비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보다는 무슨 일이든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두 달에 한 번씩 심사를 본다. 승단 심사에는 격파가 필수과목 중의 하나다. 수련이 미숙한 학생은 격파 물 앞에 서면 망설인다. 많은 군중 앞에 자신을 의식하고 또 실패하면 어쩌지(?) 하는 의심에 두려운 마음이 방해한다. 삼십 대의 승단 심사 지원자가 있었다. 피아니스트였는데 격파 물 앞에 서더니 일주일 후에 시카고에서 일만 불을 보증 받은 음악회가 있는데 손을 다치면 어쩌나 의심한 나머지 굳은 얼굴에 덜덜 떨면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만일 그 돈을 못 벌면 자동차 월부금은 어쩔 것이며 생후 2주일 된 갓난아이 우유는 어쩔 건가. 갖가지 잡된 생각에 짓눌린 그에게 승단 심사를 2개월 후로 연기한 적이 있다.

15세기 인도의 시성(詩聖) 카비르(Kavir)의 다음 말을 잘 생각해보자. ”만물에 깃든 하나(one)만을 보라. 그대를 헤매게 하는 것은 두 번째다.“ 기독교에서는 죄(罪) 얘기를 많이 한다. 죄를 히부리어로는 하타(Chatta), 그리스어로는 하마르티아(Hamartia)라고 하는데 과녁을 빗나가다(Missing the target)라는 말이다. 그럼 왜 화살이 과녁을 빗나갈까? 장자는 백발백중의 활 명수에게 놋그릇을 걸고 내기 활쏘기를 하면 괜찮은데 금 그릇을 걸고 하면 백발백중의 활 명수가 10개 중 세, 네개는 과녁을 빗나간다고 했다. 왜 그럴까? 과녁에 열중하지 않고 비싼 금 그릇에 마음을 뺏기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불가에서는 이것을 오염심 또는 오영지(汚染知)라고 한다. 카비르의 말대로 둘로 갈라진 마음의 두 번째가 우리를 헤매게 하기 때문이다.

성서 마태복음(14:25~31)에 물위를 걷는 예수를 보고 베드로가 나도 물위를 걷게 해달라고 간청해 예수가 오라고 하자 몇 발자국 물 위를 걷던 베드로는 풍랑에 휩쓸려 물속에 빠진다. 이에 예수가 그를 건지면서 하는 말, ”믿음이 적은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Oh, you of little faith, why did you doubt?)”라고 꾸짖는다. 이때, ‘faith’는 하나의 마음이고 ‘doubt’는 둘로 갈라진 오염된 마음이다. 이것이 죄다. 과녁을 빗나갔다는 말이고 또 그것은 하나에 적중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즉,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유가(儒家)에 하나는 순(純)이요. 둘은 잡(雜)이란 말이 있다. 순은 때 묻지 않은 인간의 생득적(生得的)인 천심(天心)이고 나를 헤매게 하는 두 번째 마음은 인심(人心)인데 인심이 아닌 천심에 기초한 삶이 가장 바람직한 삶, 바로 천국이다.

그리스 철학이나 현상학에 에포케(epoche)란 말이 있다. ‘판단보류’라는 말인데 판단이 두 번째 비순수의 마음이다. 에포케란 무심(無心)이라고 한다. 격파 물 앞에 선 승단 심사 지원자에게는 격파를 해야 할 것이 지금 닥친 현실인데 어째서 갓난아이의 우유를 생각하는가. 이런 갈라진 마음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일행삼매라는 말은 산스크리스트어로 사마디(Samadhi)라고 하는데 이것이 수행(禪)의 목표이다. 안으로 선정(禪定)에 들어 외적 상황(相)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평상심(平常心)에 이르는 것이다. 예수는 이것을 ‘자유’요. ‘쉼’이라고 해서 주권자(主權者)의 덕목으로 보았지 않은가. 말하자면,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이란 말이다. 그러면 무심에 관계된 무예담(武藝談)을 다음 호에 몇 편을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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