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플러스 논설고문, 미국 시카고 세계합기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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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계도의 세상만사】 17세기 일본 부난선사의 다음과 같은 선시(禪詩)가 있다.

“살아있는 동안 죽은 자가 되라. 철저히 죽은 .. 그리고 너의 의지대로 행동하라. 그러면 모든 것이 선(善)하리라.” 이 선시는 성(聖) 어거스틴의 다음 말과 일맥상통한다. “몸과 마음을 다해 먼저 하느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너 스스로 원하는 바 대로 행동하라.” 불가에 이오위칙(以悟爲則)이란 말이 있다. 깨달음으로 법을 삼으라는 말인데 이치를 깨닫고 나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저절로 알게되어 처신이 쉽고 자유롭다는 말이다. 이치를 깨닫는다는 것은 가아(假我)에 붙어있는 불순물 – 이를테면 공포, 증오, 의심, 원망, 탐욕, 집착, 분별 등을 정화하면 이타적인 본래의 내 순수한 진아(眞我)가 밖으로 들어나게 되는데 이것을 기독교적인 표현으로 거듭 남(重生)이라고 해도 좋다.

이때 우리는 두려움도 없고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생기차게 된다. 이것을 자신(自信)이라고 한다. 손자병법에도 의심은 패전의 원인이고 죽으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고 했다. 우리가 절이나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린다는 것도 나를 낮추고 죽이자는 것이 아닌가. 성서에도 “네 목숨을 구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오. 나(眞理)를 위해 네 목숨을 잃으면 살리라(마태 16:25)”고 했다. 그러기에 죽은 사람은 감히 함부로 상대할 수가 없는 법이다. 옛날 어떤 부잣집 어른이 자기 집 장닭 한 마리를 싸움닭으로 만들고 싶어 닭싸움 조련사에게 갖다 맡겼다. 그리고 열흘 후에 주인이 조련사를 찾아갔다.

”내 닭 싸울 준비가 됐습니까?“ ”아닙니다.“ ”왜요?“ ”네. 이 녀석이 사납고 힘이 센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 으스대고 제 그림자에도 놀라며 또 다른 닭이 꼬꼬대고 기면 저도 같이 따라 허둥댄답니다.“ 열흘 후, 주인은 또 찾아갔다. ”내 닭 싸울 준비가 됐겠지요?“ ”아닙니다. 제 그림자에 놀라지는 않지만 아직도 으스대며 허둥대는 버릇이 있습니다.“ 열흘 후 주인은 또 찾아갔다. ”이제는 싸울 준비가 됐겠지요?“ ”다 좋은데 조금 으스대는 버릇이 남아있어 조금만 더 훈련 시키면 될 것 갔습니다.“ 그 후, 열흘이 지나 주인이 또 찾아갔다. ”아직도 훈련이 끝나지 않았습니까?“ ”예, 이제 다 준비됐습니다. 다른 닭들이 뭐래도 따라 허둥대지도 않고 아주 조용해졌습니다.”

이 말에 주인은 정색을 하며, “아니 싸움닭이 조용해서 됩니까?” 그러자 조련사는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다른 닭들이 어르신네 닭을 쳐다보고는 그냥 도망친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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