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올곧은 고집쟁이들-2
한훤당 김굉필 20대 종손 김백용 선생을 만나다.

【대구=코리아플러스】 박형원 기자 =한휜당 전경
【대구=코리아플러스】 박형원 기자 =한훤당 고택 전경/ 코리아플러스 박형원 기자

【달성=코리아플러스】 박형원 기자 = 대니산(戴尼山).

그곳은 곧 공자의 산이다.

한훤당 김굉필(金宏弼)선생께서 일찍이 달성군 현풍에 머물면서 낙동강변에 우뚝 솟은 구지산을 대니산(戴尼山)으로 고쳐 불렀다. 

공자의 별명인 중니의 니(尼)는 그대로 살리고 대신할 대(代)를 일 대(戴)로 고쳐 ‘공자를 받드는 산`이라는 의미로 대니산(戴尼山)을 현재까지도 불려진다.

그 산 아래 예부터 못골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고, 그 중심에 한훤당 고택이 자리잡고 있다.

풍수 지리적으로 나비모양을 띄고 있는 지세가 예사롭지  않다.

한훤당 고택으로 들어오기 전  400여년 넘은 은행나무 한그루가 눈길이 간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김백용 종손(76세)이 6살 때 6.25 동란이 터졌는데 이 나무 밑둥이에 포탄을 맞아 큰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사람으로 치면 벌써 죽은 목숨 아니던가.

"처음 마음 먹은 그 순수한 뜻은 온데 없고 오로지 번잡한 상업적인 생각이 들더군요. 젊은 연인들이 와서 이곳저곳 속살 안채까지 사진찍어 올리고, 아무렇게나 쓰레기 버리고 떠들며  가더군요."

"5년전 쯤 대구시 문화국장과 함께 여러 부처에서 방문하여 고택 복원사업으로 아랫채에 한옥집을 짓었죠.

그때는 저도 공직에서 퇴직해  종갓집을 지키고 있다 보니 고택은 온기가 있어야 된다는 생각으로 승낙했죠. 

그 후 며늘아기가 이왕 한옥집으로 고쳤으니 한방차를 만들어 손님께 드리면 어떻냐고 하길래 좋은 생각이라 했죠. 

젊은 사람들이 고택에 관심을 가지고 옛것에 대한 애정을 보이면 우리의 전통 문화가 발전. 계승한다고 믿었죠." 김 선생은 차 한 잔을 내려 놓으며 말을 이어갔다.

【대구=코리아플러스】 박형원 기자 =한훤당 김굉필20대손   =코리아플러스 박형원기자
【대구=코리아플러스】 박형원 기자 =한훤당 김굉필 20대 종손 김백용선생 / 코리아플러스 박형원 기자

"처음 마음먹은 그 순수한 뜻은 온데 없고 오로지 번잡한 상업적인 생각이 들더군요. 젊은 연인들이 와서 이곳저곳 속살 안채까지 사진 찍어 올리고, 아무렇게나 쓰레기 버리고 떠들며 이야기해서 지금 와선 접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이곳 한휜당 고택 카페는 대구에서 꽤 유명세를 타고 있다.  "현재는 코로나로  잠시 임시휴업을 하고 있지만 지난달까지만 해도 많은 연인들과 가족 단위로 고택을 찾아 차도 마시면서 사진을 찍어 가곤 했었죠."  종부님이 직접 달여 주신 대추차가 아주 향기롭다.

【대구=코리아플러스】 박형원 기자 =한훤당 고택 전경/ 코리아플러스 박형원 기자

김백용 종손은 인근 현풍. 중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셨다. 34년 공직에 교감으로 정년퇴직하고 부인과 함께 한휜당 고택에 들어와 종가를 지키고 있다. 지금은 번듯하게 고택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지만 선생이 들어온 15년 전만 해도 낡고 허물어져 어디서부터 손댈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아침 먹고 이곳 조금 점심 먹고 저곳 조금 고쳐 나가다 보니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사람의 손길이 이처럼 무서운 것이다.

"오래된 고택 가옥에 담긴 삶의 애환과 희노애락등을 체험하고 선조들의 올곧은 마음, 즉 사람이 먼저고 수신이 먼저인 인문학적 소양을 집으로부터 배워 나가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집은 사람의 온기가 있어야 되고, 고택을 지키고 종가를 지켜 내는 건 주인의 몫이기도 하지만 국가가 일정부분 지원하여 전통 한옥을 살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오래된 고택 가옥에 담긴 삶의 애환과 희노애락 등을 체험하고 선조들의 올곧은 마음. 즉 사람이 먼저고 수신이 먼저인 인문학적 소양을 집에서부터 배워 나가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김 선생은 사람됨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말한다. 예전 인문학 강의하러 학교에 가면 휴식시간에 복도에 마련된 휴지통 근처에 담배꽁초들이 널브러진 것을 보고 학생들에게 "여러분은 양반과 상놈 중 누가 되고 싶으세요?" 이렇게 묻으면 다들 양반이 되고 싶어 한다.  "양반이 되고 싶으면 그에 따른 행동이 뒤따라야 되지 않을까요?"  하고 되묻으면 그 뒤로 학생들이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대구=코리아플러스】 박형원 기자 =한훤당 광제헌 전경 /코리아플러스 박형원기자

"인간으로써 당연히 해야 될 일과 하지 말아야 될 일을 구별하며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면 예(禮)가  아니라고  가르쳐 주셨죠"

"저희 선조이신 한휜당 선생께서는 그렇게 뛰어난 분도 아니셨고, 후세에 많은 서책을 남기신 분이 아니셨죠. 그러나 연산군때 무오사화를 겪고 집안이 풍지박살날 때도 소학(小學)을 배우고 실천하신 '실천공행'의 삶을 살아 오셨지요. 인간으로써 당연히 해야 될 일과 하지 말아야 될 일을 구별하며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면 예(禮)가 아니라고 후대에 가르침을 주신 게  집안의 가풍입니다".

【대구=코리아플러스】 박형원 기자 =한훤당 고택 풍경-김백용 종손소장품 /코리아플러스 박형원 기자
【대구=코리아플러스】 박형원 기자 =한훤당 고택 풍경-김백용 종손 소장품 /코리아플러스 박형원 기자

김 선생은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손수 집안 여러곳을 안내해 준다. 큰 인물이 났음을 상징하는 홍살문양의 솟을대문을 지나 좌측에는 사랑채인 광제헌이 나온다. 현재는 불천위 제사를 모시는 제청(祭聼)을 겸하고 있다. 정면 6칸 측면 1.5칸에 홑처마 팔작지붕이며, 대청북벽에는 소학세가(小學世鄕) 편액이 고졸하게 역사를 보여주듯 걸려있다. 사랑채 앞뜰에는 사각형의 작은 연못 있으며, 방지원도(方地圓島)라고 하여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났다는 동양 전통사상을 연못에다 심어 놓았다. 연못 주변에는 백일홍과 청솔나무가 더해져 운치가 멋스럽다.  솟을대문 우측 편으로 눈을 돌리면  한옥카페인 by soga가 소담스럽게 자리 잡고 있고. 정면에는 정침. 곧 안채가 나온다. 정침 뒤로 제일 높은 곳에는 한훤고택 불천위 사당이 근엄하게 자리 잡고 있다.

【대구=코리아플러스】 박형원 기자 =한훤당 사당에서 바라보는 고택 전경/ 코리아플러스 박형원 기자

소학세가(小學世鄕). 

남보다 뛰어난 목표보다 가정의 화목. 이웃과 더불어 순조롭게 삶을 살아가는 한훤당 고택의 김백용 종손. 그는 이 땅의 선비 같은 삶을 몸소 실천하고 틈틈이 소학(小學)의 깊은 의미를 묵향으로 시간을 보낸다.

【대구=코리아플러스】 박형원 기자 =김백용 종손 / 박형원 기자
【대구=코리아플러스】 박형원 기자 =솟을대문 앞 김백용 종손 / 코리아플러스 박형원 기자

새해가 밝았다. 저마다 추구하는 목표와 계획의 출발선에서 한휜당 고택의 김백용 종손이 들려주는 겉은 엄격하고 속은 따뜻한 실천공행의 소학(小學)을 깊게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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