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란 한국평생학습지원센터 충북센터장, 논설위원

강미란 한국평생학습지원센터 충북센터장, 논설위원

【강미란 칼럼】 7년 전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 두 분과 점심 약속을 한 날이다. 장소는 갈치조림으로 유명한 단골 음식점이다.

그런데 도착하니 바로 맞은편에 샤브샤브집이 개업하는 날이다. 일행들과 어디를 선택할까 고민을 하다 샤브샤브 집으로 향한다. “참 좋은 인연이 되고 싶습니다.”라는 문구가 우리의 발길을 돌리게 한 셈이다. 음식점 손님맞이가 남다르다. 입구에 배너의 문구가 먼저 손님을 맞는다. 마음이 울적하고 화가 날 때, 스트레스가 많아 모든 일이 짜증 날 때 정다운 샤브가 기분 좋게 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한다. 더운 날은 시원하게, 추운 날은 따뜻함으로, 기다리고 있겠단다. 매장에서 작은 불편함이라도 있어 주인을 찾으면 홍길동처럼 짠!∼나타나 해결해 주겠다고 손 전화번호도 적혀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해피하다. 주문을 받으러 온 종업원이 보리 강정과 건빵을 푸짐하게 담아왔다. 반찬도 후식도 무한리필이란다.

주문서를 내려놓은 종업원의 손이 벽 쪽의 문구를 향한다.“정다운 ‘버섯 샤브’ 이용 방법”“정다운의 피자 버섯 샤브는 1인분 적게 주문하세요.(양이 많아요)”“2인분만 주문해도 돼요.(착한 식당) 3인분 주문하시면 고기를 ‘곱빼기’로 드려요.”생소한 문구다. 음식점에서 인원수를 줄여서 주문하면 눈치가 보이기 마련이다. 우리는 반신반의 하면서 2인분을 주문했다. 잠시 후 버섯과 야채가 푸짐하게 나왔다. 우리가 기대한 이상의 양이다. 찬합 속에 삼색 국수, 계란, 참기름, 김 가루가 살짝 덮인 죽 재료까지 정갈하게 담겨 나왔다. 음식 차림에 주인의 정성과 정다움이 느껴졌다. 푸짐한 양, 착한 가격, 친절한 배려로 가격대비 만족도는 최상의 점심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화장실을 갔다. 음식점 외부에 딸린 화장실은 남녀 공용으로 두 개의 칸으로 나뉘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여느 화장실에서 볼 수 없는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좁은 화장실 구석에 꽹과리와 피리가 있었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볼일 보는 것을 잊은 채 도대체 이 물건을 왜 화장실에 두었는지에만 관심이 쏠렸다. 두리번거리다 꽹과리 옆에 글귀를 발견했다.“남녀 화장실을 분리하지 못했습니다.정∼ 소리가 신경 쓰이는 분은 리코더를 연주하세요.” “또 하나, 공지사항 ‘만일 휴지가 떨어지는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 꽹과리를 쳐 주시기 바랍니다.”남자 소변기가 따로 없으니 남녀를 불문하고 좌변기를 이용해야 한다. 들어가 볼일을 보려는 순간 옆 칸에 사람이 들어온 기색이다.

잠시 후 폭포수 같은 소리가 들린다. 남자가 분명하다. 나가기도 민망한 상황이다. 그런데 양쪽 화장실에서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찰나에 두 문이 동시에 열렸다. 둘 다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피했다. 리코더는 이러한 사태를 염려한 주인의 배려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리코더를 불고 꽹과리를 친들 크게 상황이 달라 질 리는 없다. 하지만 손님들은 주인의 세세한 배려와 염려를 알기에 누구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주인의 염려가 이어졌다.‘볼 일은 잘 보셨나요.’‘미안하지만 부탁드릴 게 또 있네요. 사용 후 출입문은 꼭 닫아 주시고요, 불도 꼭 꺼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친절한 문구가 주인을 대신한다. 손님들은 모두 사장님의 겸손한 부탁에 동참했다.

화려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음식점이다. 오히려 불편해서 불만이 가득할 법도 한 가게다. 그러나 손님을 향한 생소한 배려는 손님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맛뿐만 아니라 손님의 마음마저 헤아려 차려내는 음식이야말로 최고의 진수성찬이 아닌가. 배려는 타인의 삶의 청량제도 된다. 일행들은 이구동성 잘 대접받은 점심이었단다. 식사를 마치고 나가려는 우리에게 사장님이 뽑기를 하란다. 쑥 뽑은 쿠폰은 38번이다. 다음 식사 때 사용할 수 있는 ‘어묵 사리’가 적혔다. 만족한 점심 메뉴에 어묵 사리 추가메뉴까지 얻었으니 행복이 배가되는 점심이었다. 우리는 타인에게 얼마나 배려하며 살고 있는가.

배려는 사소한 곳에서 시작된다. 남에게 웃음 지어 주는 것, 내 일처럼 걱정해 주는 관심, 내 것을 조금 덜어주는 나눔으로 시작되는 것이 배려이다. 생소한 배려로 타인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가게였다. 생소한 배려는 의도한 배려가 아니다. 타인을 세심하게 살피는 마음이다. 그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음의 사다리를 놓아 정을 나눈다. 일행들은 젊은 사장님의 참신한 경영철학과 손님을 먼저 생각하는 인간적인 배려를 보며 단골 맛집에 한 표를 던졌다. 분명 ‘대박’ 음식점이 되리라 의심치 않았다. 나는 그날 성공을 파는 가게에서 생소한 배려를 사서 돌아왔다.“참 좋은 인연이 되고 싶습니다.”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자리에 그대로 붙여진 글귀다.

생소한 배려 맛집‘정다운 샤브샤브’와 나의 ‘참 좋은 인연’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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