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플러스 논설고문, 미국 시카고 세계합기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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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계도의 세상만사】 나는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지하 묘지의 한 영국 성공회 주교(11세기 성명 미상)의 묘비(墓碑)에 새겨진 글을 접한 적이 있다.

“내가 젊어서는 세상을 바꾸어 보리라 생각했다. 허나, 내가 철이 들어서는 그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내 나라만이라도 바꾸어 보리라고 했지만 그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내 생의 황혼기에는 내 가족만이라도 바꾸어 보자고 생각했다. 아! 그것 또한 허사였고 이제 죽음의 문턱에 다달아 보니 내가 먼저 변했어야 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랬으면 내 가족이 변했을 테고 그로 인해 내 나라가 변할 수 있었을 것을, 또 누가 아는 가. 그로 인해 온 세상이 바뀔 수도 있었을지...” 사실 이글은 9세기경 페루샤 이슬람교의 신비주의자 성(聖)버스타미 바야지드(Bastami Baiyazid)가 남긴 말이지만...

그렇다! 우리는 대부분 남이 먼저 변하기를 기다리고 또 변화시키고 자 애를 쓴다. 허나 헛수고다. 남이 변하기를 바라기보다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것은 철칙이다. 부부간 형제자매간 친구지 간 기타 어느 누구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대로이면서 남에게 나처럼 되라고 고집부리니 싸움만 일어난다. 종교 간도 그렇고 정치사회도 매한가지다. 우리 한국 정치사회의 특징 하나는 걸핏하면 당명을 바꾼다. 문제는 당명을 바꾼다고 무슨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가. 당내 구성원 각 개인의 변화 없이는 얼토당토 않는 말이다. 흰여우가 굴뚝에 들어갔다 나왔다고 검은 여우가 되기를 바라는 격이지...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새해결심’에 다들 열을 올린다. 하지만 2~3개월이면 도루묵이 되는 것이 예사다. 그래도 새해를 기대해 보고 싶다.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만 해도 우선은 족하다. 직문 드 프로이드는 “지성의 목소리는 약하다. 그러나 끈질기다.”라고 했다. 알면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는 말이다. 비 종교학자 후레데릭 스트렝(Frederik Streng)은 종교는 “자기 자신의 궁극적 변혁을 위한 수단”이라고 했다. 그러나 2천여 년 동안 종교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재작년 나는 인터넷을 통해 서울 모 대형교회 목사이 휴거에 관한 설교를 듣고 너무도 놀랐다. 내용인즉, 미국의 유나이티드나 아메리칸과 같은 큰 항공사에서는 조종사가 크리스찬이면 부조종사는 반드시 크리스찬이 아닌 사람을 고용한다면서 그 이유는 비행중 조종사가 휴거 되면(하늘로 들려지면) 부조종사가 승객의 안전을 대신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따위의 설교에 신도들은 어떻게 변할까...

미국의 성공회 신학자이자 신약학자 마커스 보그(Marcus Borg)는 오늘날의 성직자들은 신도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가르치지 않고 있다며 개탄했다.  지금 독일을 위시한 유럽 전역에서 ‘드레버만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오이겐 드레버만(Eugen Drewermann)은 철학, 신학 또 정신분석학자도 지금은 바티칸 지도부와 신학적 윤리관과 성서 해석에 마찰이 생겨 대학의 신학 교수직과 신부직에서 파면 당하고 저술과 강연활동에 전념하고 있는데 그는 오늘날 많은 성직자들이 정신치료 상담의 대상임을 주장하고 있다.

한문에서 온 휴거(携擧)라는 말은 영어로 repture란 말인데 그 어원인 라틴어의 ‘rapiemur’라는 말은 ‘공중으로 채어 올려진다’는 뜻 외에 ‘ekstasy’ 즉 최고의 환희, 행복이라는 뜻으로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 들뜬 최상의 희열을 의미한다. 깨우친다거나 거듭난다거나 소인이 성인이 되고 즉 자기변혁을 통해 느끼는 즐겁고 행복한 짜릿한 심경을 나타내는 말이건만... ‘日日是好日’이라. 그저 매일 매일이 좋은 날이거늘 왜들 허상에 억매이는가. 누구나 처음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를 날으는 기분을 묘사해 보자.

잡다한 세속의 탈피가 휴거이다. 자기변혁(새사람 됨)없는 탈속(脫俗)은 없다. 새해에는 탈속의 환희를 함께 나누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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