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플러스 논설고문, 미국 시카고 세계합기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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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플러스 논설고문, 미국 시카고 세계합기도회장

【장계도의 세상만사】 채근담(菜根譚) 82장에 이런 시가 있다.

“대숲에 바람 부니 ‘사그락’ 대숲 흔들리는 소리

허나 바람 자고 나니 대숲은 바람을 잡지 않는고야

호수에 나르는 기러기 물 위에 그림자 드리우나

기러기 가고 나니 호수는 그림자를 잡지 않는고야

고로 군자는 집착이 없으매 늘 빈 마음일러라.”

이것이 불가(佛家)의 평상심이고 예수님이 말 한 주권자(主權者)의 자유요. 쉼이다.(도마복음 2장) 스스로 그러할 뿐인 자연이라는 말이다.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필로(Philo)는 “인간은 스스로를 우주 대자연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스피노자(Barch Spinoza)는 신(神), 자연, 실체를 하나로 보았는데 그래서 유대 사회에서 핍박을 받고 추방을 당했지만 그것은 당대 종교인들의 무지 탓이었다. 나는 자연이 신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따지고 싶지 않다. 다만 무집착(無執着)은 신이 성품인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흐르는 물에 돌을 던지지 말라.

흐르는 물은 맑고 생기(生氣)차나

돌 탓에 막힌 물은 썩는다.

고인 물이 높아져 돌을 넘쳐 흘러도

썩은 그 자리에 쓰레기와 기생충은 여전하다.’

녹은 쇠에서 나오지만 그 녹은 쇠를 먹는 독(毒)이라는 말이다. 원한, 미움, 교만, 욕심, 편견에 집착함 탓이니 나에게도 남에게도 해독(害毒)은 마찬가지다. 해법을 아는가. 그야 물 흐름을 막고 있는 돌을 치우면 쓰레기와 기생충이 쏴~악 씻겨 내린다. 이것이 정신상담 치료의 근본이라며 돌 치우는 방법을 묻는 카운슬러에게 내가 지도하는 새벽 기 운동에서 오랫동안 명상을 가르친 적이 있다. 모든 걸 내려놓으란 말이다. 불가에서는 이것을 방하착이라고 한다. 쌩덱주베리는(St Expery)는 ‘완전하다는 것은 내 마음에 가득 채우고 채워 더 이상 채울 수 없는 상태가 아니라 비우고 비워서 더 이상 비울 것이 없는 상태’라고 했다.

한 봉사가 산길에서 실족하여 벼랑으로 굴러떨어졌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나뭇가지를 붙잡고 목숨은 건졌으나 가지를 붙잡은 손의 힘이 빠져 손을 놓치면 한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을 것만 같아 살려달라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마침 행인이 지나다 보니 대롱거리는 발과 땅 사이는 한자밖에 되지 않아 손을 놓으면 무사 하련만 안간힘만 쓰고 있었다. 눈을 떠야 한다. 눈뜬 세상은 천상의 삶이고 눈감은 세상은 어둡고 괴로운 지하의 삶이다. 사철 무더운 인도 남부나 아프리카 열대지방의 농민들이 원숭이를 생포하는 법은 아주 쉽고 간단하다. 주둥이가 좁은 큰 병 속에 바나나를 넣어 나무 밑 땅속에 묻어두면 원숭이가 다가와 병 속의 바나나를 움켜쥐는데 농부가 다가오는데도 먹이를 틀켜쥔 손의 부피가 커져서 손을 뺄수 없으니 발버둥만 치고 있다. 그래서 생포된다. 참 어리석다.

불가에서 흔히 하는 말, “중생은 주먹이고 활짝 편 손은 각자(覺者)의 것이다.” 왜 그리 서울은 아수라장인가. 돈에 권력에 또는 명예에 집착하는 탓이다. 봉사나 원숭이처럼 방하착을 못하는 탓이다. 자! 손을 펼 것이냐. 주먹을 쥐고 있을 것이냐는 각자가 선택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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