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계도 코리아플러스 논설고문, 미국 시카고 세계합기도회장

장계도 코리아플러스 논설고문, 미국 시카고 세계합기도회장

【장계도의 세상만사】 1517년 종교 개혁의 선구자 마틴루터(Martin Luther)는 “만사는 희망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했다.

말하자면 희망은 가능성을 예지하고 움직이는 힘의 원동력이라는 말이다. 프로이드는 행위의 동기를 소원의식이라고 보았는데 나는 그 소원의식을 성취할 수 있다는 긍정적 기대감(自信)이 있을 때 행동이 있게 된다. 즉 소원의식+긍정적 기대감=행동이라는 말이다. 칼 메닝거는 희망을 “성취할 수 있다는 소원의식”이라고 했다. 그럼, 절망은 뭔가? “절망은 소원의식이 성취될 수 없다는 내적 에너지 분출의 억제”라고 칼 메닝거는 또 말한다. 그래서 절망은 무기력(無氣力)을 유발해 행동이 없다. 즉 사람이 나약해지고 인체 면역력도 떨어지고 병들고 쉽게 늙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꿈과 희망을 잃지 말라는 말을 자주하고 듣는다. 사실 꿈과 희망을 대개들 같은 뜻으로 사용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꿈은 성취에 대한 가능성이 없거나 희박한 바람이고 희망은 성취 가능성을 의식하고 내적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분출하는 행동력을 가진다. 13세기 단테(Dante Alighieri)는 그의 서사시 신곡(神曲:Divine Lomedy) 지옥 편에서 “희망이 없는 곳 바로 거기가 지옥이다.”라고 했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라는 키에르 케고르의 말처럼 꿈과 희망을 잃은 사람에겐 약이 없다. 그저 죽음을 재촉하고 있을 뿐이다.

1957년 생물-심리학자 릭터(C.P.Richter)는 같은 어미에서 태어난 같은 둥지의 야생 들쥐를 ‘그룹 A’와 ‘그룹 B’로 나누고 그룹 A의 쥐들을 손안에 쥐고는 도망치려고 할 때마다 몇 번이고 더 세게 틀켜 쥐었더니 나중에는 손바닥을 펴고 있어도 그들은 도망을 못하고 부들부들 떨면서 무기력해지자 그들을 물탱크 속에 넣고 관찰했더니 평균 30분쯤 해서 물속으로 빠져 죽었지만 그룹 B의 쥐들은 야생 그대로 물탱크에 넣었더니 평균 60시간을 헤엄치는 것을 알게 되었다. 30분과 60시간이란 120배의 엄청난 차이다. 그런데 그룹A의 쥐들이 물속에 빠져죽기 2~3분 직전 꺼내어 다시 손바닥에 올려놓고 도망가도록 밀고 꼬집는 자극을 주었더니 움직이지 않던 쥐들이 손바닥에서 뛰어내렸다. 그 후 다시 손바닥에 올려놓았더니 자발적으로 즉시 도망을 쳤다. 그런 다음 다시 물탱크에 그들을 집어넣어 관찰했더니 그룹 B의 야생 그대로의 들쥐처럼 60시간을 헤엄치는 것이었다. 희망을 잃었던 그룹A의 들쥐들은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하고 희망을 감지한 후 본래의 생태적 기력을 회복했다는 말이다.

이것을 행동면역(Behavioral Immunization)이라고 한다. 혹 여러분의 어린 자녀들이 우울증에 소극적이고 무기력하다면 잘 생각해볼만한 실험이다. 학교에서 왕 따를 당하는 아이들의 지옥 같은 심경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런 면에서 아이들을 무술 도장에 보내는 것을 권하고 나는 또 사범들이 제생들을 행동 면역시켜 본래의 잠재능력을 일깨우는 것을 보고 그들의 정성과 노고에 깊이 감사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에 소속된 거카(Gur Khas) 사단이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용맹스럽다는 네팔(Nepal) 출신 거카 족속으로 구성된 특수부대로 미얀마 전투에 투입되었다. 그런데 그중 한 병사가 실종되었는데 그는 걸어서 1400마일을 4개월 만에 부대를 찾아왔다. 적군의 포위망을 뚫고 맹수와 독사가 우글거리는 험난한 정글을 헤쳐서 말이다. 그런데 그 병사의 손에는 다 헤어진 지도 한 장이 들려있었다. 그러나 그 지도는 전장(戰場:정글)의 지도가 아닌 런던 시내의 관광안내도였다. 네팔의 이 시골 청년은 언젠가 죽기 전에 런던 시내를 한번 맘껏 구경하고 싶었던 것이 꿈이요. 희망이었다. 그래서 늘 그 안내도를 몸에 지니고 다녔던 것이다. 이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여러 번의 죽을 고비에도 이 지도 한 장이 나를 살렸다.”

저작권자 © 코리아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