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코리아플러스】 장영래 기자 = 대전일보 박우경 기자의 5월 31일자 기사 2005년 대전시 보호수 해제 후 방치…개인 소유 이전되며 최근 벌목의 제목, 주민들 "지역 유래 나무 살려달라" 민원에도 행정당국 뒷짐 부제목의 기사를 카톡으로 태평초등학교 선배가 보내왔다.

대전시 보호수로 지정됐다가 해제된 대전시 중구 유천동 325-12번지에 자리했던 300여년이 된 왕 버들나무가 최근 대전시와 중구 등 행정당국의 무관심 속에 잘려 나간 것이 뒤늦게 확인돼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사진=네이버 거리뷰

기사는 대전 중구 유천동에서 300여 년간 자리를 지킨 유천동의 얼굴이자 문화재적 가치가 적지않은 왕버들나무가 잘려 나간 것으로 뒤늦게 확인돼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대전시 보호수 지정이 해제되고 소유권이 개인으로 변경되며 벌목된 것인데, 지역 유산을 보존해야 할 대전시와 중구 등 행정 당국이 관리에 너무 소홀히 한게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다.

대전시는 지난 1982년 중구 유천동 325-12 일원에 위치한 왕버들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했다. 보호수는 대전시가 보존 가치가 있는 수목을 보존하기 위해 지정했었다. 당시 왕버들나무 수령은 230여 년, 높이는 15m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열리는 유천동 산신제와 버드내거리제의 유래는 이 왕버들나무라는 것이 주민들의 전언이다.

하지만 왕버들나무는 지난달 개인에 의해 벌목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2005년 대전시 보호수 지정이 해제되면서 부지와 함께 나무 소유권이 개인에게 돌아갔는데, 시간이 경과되고 땅이 매각되는 과정 등에서 나무가 폐기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해당 땅을 갖고 있었던 소유주는 "내가 땅을 보유하고 있을 때나 땅을 팔 때도 분명히 나무가 그대로 있었다"며 "내가 땅을 소유하고 있을 때 몇 차례 전지작업까지 해주는 등 정성껏 보호했었다"고 밝혔다.

또한, 보호수 해제 이유는 시간이 흘러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게 대전시의 설명이다.

문제는 왕버들나무 벌목 소식을 들은 주민들이 대전시와 중구청에 민원을 제기했으나, 행정 당국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천동 버드내 마을 주민 일동은 지난 3월 "왕버들나무 땅 소유자가 부지를 타인에게 매각하기로 하면서 나무의 생사가 불투명해졌다"며 "이 나무는 유천동 산신제와 버드내거리제 등 지역의 역사성이나 문화재적 가치가 지대하다. 유구한 역사와 애환을 품고 있는 왕 버들나무가 안녕과 기복을 계속 이어 갈 수 있도록 선처 바란다"고 중구청 측에 호소했었다.

그런데, 대전시와 중구청은 보호수 해제로 관리 책임이 소멸해, 권한이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중구청 한 관계자는 "보호수 지정 동안은 구청에 관리 책임이 있지만, 지정이 해제되면 소유권이 개인에게 돌아간다. 해제 후에는 자치구도 관리할 권한이 없다"며 "유천동 주민들에게 이러한 이유를 잘 설명했다"고 밝혔다.

유천동에서 40년 간 살아온 주민 우모씨(76세)는 "어릴적 유등천을 따라 큰 버드나무들이 몇 그루 있었다. 도시 개발로 남은 것은 왕버들나무 하나였는데, 이제 이 나무마저도 사라졌다"며 " 유천동의 얼굴이지 주민들과 동고동락한 나무가 사라지니 주민들은 참 허탈한 심정"이라고 설명했다는 내용이다.

어릴적 내가 뛰어놀던 그 곳이다. 내를 따라 물장구 치고 물고기를 잡던 곳이었다. 할아버지가 막걸리를 먹여 술에 취해 모래방에서 잠을 자던 곳. 돌을 놓아 빨래터에서는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고 외딴 집으로 가던 길로 한가로히 뛰어 다니던 곳이다. 상평과 중평, 하평마을 가운데 중평에 태평초등학교가 생겨 운동장을 만들기 위해 자갈을 달리던 기억이 어제 같다.

태평초등학교 1기인 선배는 "사람이 하는 일인데, 이 곳 대전 사람 이었으면 이러한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유천동 마을신문을 만들어야 겠다"고 덧붙였다. 먼저 내가 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가라는 생각에 이 것이라고 결정하고 글을 쓴다.

유등천 제방 기념비에는 1916년 12월 1일 세우다라고 적혀있다. 이 물줄기 흐름이 한결같고 완전하여 이 모든 백성을 편안하게 하소서 (저는) 목사도 도지사도 아지만 올려 베푸나이다. 일제시대때 유등천 제장공사를 한 뒤 이 같이 유등천 제방비를 세웠다.

몇 백 년이 넘도록 살아남은 왕버들이 유등천 직강공사로 왕버들은 고목이 됐다. 지난 1976년 대전시의 도시개발로 세 그루가 없어지고 용머리보 가운데 위치했던 왕버들 한그루만 남아 있었다. 대전시 유천동 325-1번지 주택마당에 남아 있었다. 유천동 버드내들의 젖줄인 유등천은 '버드네' 또는 '유천'이라고 불린다. 버드내는 버들이 많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버드내 들의 보는 1930년 당시 농사와 생활용수로 쓰였다. 사시사철 흐르는 보와 도랑물은 빨래와 어린아이들의 멱 감고 물고기를 잡는 장소였다. 장마가 끝나면 자기 논에 물을 먼저 대는 아전인수가 일쑤여서 자기들 뜰에 물을 먼저 대려고 패거리가 돼 패싸음으로 번지곤 했다.

들이 넓고 보가 많아 우여곡절을 많이 격었던 버드내들에 얽힌 이야기를 민속놀이로 표현한 '버드내보싸움놀이'는 지난 1998년 전국민속예술축제에서 장관상을 수상했다. 이에 유천동 버드내보싸움놀이보존회가 결성돼 대전시의 대표적인 민속놀이로 만들어 가고 있다.

큰물이 지면 산에서 버드나무들이 떠 내려와 냇가 고운 모래밭에 뿌리를 내렸다. 그 버들은 내를 따라 가지런히 잘 자랐다. 버들이 숲을 이뤘고 사람들은 버드내라고 이름 붙인 뒤 버드나무가 가지런히 잘 서있는 내 '버드내'라고 불렀다.

내 전공은 축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었다는 결론이다. 그 가운데는 공동체의 다이나믹한 생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이름해 K팝 등이다.  이러한 마을공동체의 가치를 세계화 할 수 있는 미래 가치를 가진 리더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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