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플러스 논설 고문, 미국 시카고 세계합기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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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계도의 세상만사】 2017년 5월 아프리카 짐바부웨의 조나단 ‘음데트와’라는 한 목사가 신도들을 초청해놓고 자신의 신앙심을 증명한다면서 예수처럼 물 위를 걷는 시범을 보인다고 강(江)에 뛰어들었는데 그만 악어들의 공격을 받았다.

30분쯤 후에 구조대가 도착했을 때는 그 목사의 신발짝과 찢겨진 옷가지만 물 위에 떠 있었다. 비운(悲運)이다. 물 위를 걷는 시범을 보인다고 여러 날을 단식기도까지 드렸는데... 성서의 누가복음을 제외한 3 복음서에 풍랑에 휩쓸리는 제자들이 탄 배를 향해 갈릴리호수를 걸어오신 예수님 얘기가 있다. 분명 ‘음데트와’목사는 이 성경 구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 것이 큰 실수였고 그 실수가 죽음을 자초했다.장자 외물편에 ‘筌者所以在魚(전자소이재어)’ ‘得魚以忘筌(득어이망전)’‘言者所以在意(언자소이재의)’ ‘得意而忘言(득의이망언)’이라는 말이있다. “통발은 고기를 잡는데 필요하고 고기를 잡고나면 통발은 잊어버리고 말은 뜻을 전하는 것이니 말뜻을 알았으면 그 말을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 무슨 일이던 일단 목적을 이루고 나면 수단이나 방편에 매달리지 말라는 뜻이다.19세기 말 20세기 초 불란서의 철학자 ‘앙리 벨그송(henri Bergson)’은 말했다. “일반 대중을 이끌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편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수단과 방편에 매달리(집착)는 사회는 퇴화(退化)한다.”고...

재작년 나는 서울 어느 대형교회 목사의 ‘휴거’에 관한 설교를 인터넷을 통해 듣고 퍽 놀란 적이 있다. 설교 내용인즉 아메리칸이나 유나이티드 항공사에서는 조종사가 크리스찬이면 부조종사는 반드시 크리스챤이 아닌 사람을 고용한다면서 그 이유는 조종사가 휴거 되면 즉 공중으로 들려지면 부조종사가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연실색할 노릇이다. 마치 어린애들에게 산타크로스 할아버지 얘기를 강조하듯 사람들을 어린애 취급하듯 하는 설교에 화가 치밀기도 했다. 아마도 이 목사는 데살로니가 전서 4장 16절~18절을 말하는 듯 했지만 예수 재림과 휴거의 의미가 옛것은 가고 새 세상을 맞는 환희의 극치(ecstasy 본래 라틴어 rapiemur에서 온 말로 한문에서는 휴거携擧라고 번역했음)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사도 바울(ST. Paul)은 문자(文字)는 사람을 죽이고 영은 사람을 살린다(고린도 후서 3:6)고 했다. 문자나 조문(條文:612개의 윫법)에 억매인 바리새인이 되지말라는 경고다.

18세기 철학자 흄(D. Hume)이나 칸트(I. Kant)의 지적처럼 “우리가 이해한다는 것은 그저 정확하고 객관적인 정보수집이 아니라는 해석이다.” 바른 해석을 통한 지혜 없이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우리는 갓난애를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가까이 다가가 안고 얼러보고 싶어진다. 세상 물정에 물들지 않은 순진무구 성 때문이다. 그런데 누가 갓난애를 보고 “아이 고거 귀여워라! 그저 깨물어 죽이고 싶네!”라고 하면 몹시도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말일진대 이 말을 들은 애기엄마가 자식 칭찬에 감사는커녕 그 사람을 되려 경찰에 신고 한다면 얼마나 우스광스럽고 바보 같은 일이겠는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은 귀먹어리요. 봉사다. 예수님은 귀먹고 말못하는 벙어리를 고치고 봉사를 눈 뜨게 하지 않았던가. 내 어찌하면 말귀를 알아듣는 사람과 함께 대화할 수 있을까. <吾安得夫忘言之人 以與之言哉>라는 장자의 말을 되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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