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코리아플러스】 장영래 기자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대전=코리아플러스】 장영래 기자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지난 해 무궁화를 심었다. 앞 마당에 무엇을 심는 것이 줗을 까 생각한 끝에 결정을 내려 무궁화를 심었다.

첫 해에는 꽃이 한송이 정도 필까 말까 했는데, 올해는 꽃 들이 많이 피어 제법 그 자태를 뽑내고 있다.

다음 해에는 무궁화를 다섯개 정도 더 심어야 겠다. 그러면 무궁화 동산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 싶어 질 것 같다.

무궁화 꽃이 가득한 정원을 생각해본다.

그러면서 민족만 있고 국가는 없다는 최근의 이슈를 알아보기 위해 이영훈의 역사비평을 들어본다.

다음은 민족주의, 구 허상과 실상을 인터뷰한 팬앤드마이크 기사와 조선일보가 함배봉 교수의 인터뷰 기사 전문이다.

[송의달이 만난 사람] 친중이냐 친미냐 기로의 선택은? 함재봉 박사 인터뷰

“‘친중·친북 노선’ 5~10년 더 계속되면 한국 미래 매우 어두울 것”...‘한국 사람 만들기 Ⅲ' 발간

“절망(絶望)의 땅이던 1880년대 조선에 보급된 미국 개신교는 ‘조선 사람’을 ‘한국 사람’으로 만드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한 예로 미국 선교사들은 성경을 순 한글로 번역함으로써 세종이 창제했으나 그 후 조선 지식층이 버린 한글을 재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띄어쓰기와 가로쓰기를 처음 시도해 우리도 ‘한문(漢文·중국의 글)’이 아닌 ‘국문(國文·국민의 글)’을 가질 수 있도록 한글을 ‘재(再)창제’했습니다.”

중견 정치학자인 함재봉(62) 박사는 이달 12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120여년간의 역사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한국인은 세계를 향해 개방할 때 가장 큰 능력을 발휘하며 빛나고, 스스로를 가둘 때 쇠망한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개방하면 세계 최고...문 닫으면 평균 이하”

“삼성전자 같은 세계 1위 기업을 비롯해 손홍민, 박세리 같은 스포츠 스타, BTS와 봉준호 감독 같은 문화 영웅, 세계로 뻗어가는 K뷰티와 K푸드 등을 보세요. 반대로 개방과 담쌓고 폐쇄적인 정치권은 우리 국민 평균 수준보다 훨씬 못하잖아요.”

함 박사는 20여년 전부터 ‘한국 사람 만들기’라는 한국인의 정체성과 계보학 탐색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첫 결과물로 2017년 하반기 ‘친중(親中) 위정척사파’와 ‘친일(親日) 개화파’를 다룬 각 500쪽 분량의 책을 냈다. 지난달 말에는 ‘한국 사람 만들기-친미(親美) 기독교파 1’이라는 세 번째 책을 냈다.

1884년 갑신정변에서 1894년 청일(淸日)전쟁 발발 직전까지로 시기를 제한했지만 1008쪽 분량에 주석(註釋)과 참고문헌만 90쪽이다. 정확한 자료를 바탕으로 풍부한 지식과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기독교가 왜 어떻게 조선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미국 선교사들이 전교한 ‘개신교’가 무슨 종교인지 알아보기 위해 500여년 전 종교개혁으로 거슬러 올라가 사상사적, 비교사적, 인류학적 접근을 했습니다.”

◇“1000쪽 분량 책, 보름 만에 1000여부 다 팔려”

- 방대한 분량인데 저술은 어떻게 했나?

“2019년부터 2년 동안 아침 6시부터 정오까지 오전 6시간 집중작업을 했다. 대부분의 자료들이 서재에 있어 집에서 주로 작업하되 매일 출근한다는 긴장감을 갖고 했다. 1000쪽이 넘는 책인데도 보름 여만에 초판 1쇄 1000부가 거의 다 팔려 2쇄에 들어갔다. 우리 사회의 지식 수요와 욕구가 크고 깊어진 것 같다.”

- ‘친미 기독교파’의 영향은 어느 정도인가?

“제1장(章)의 제목 그대로 ‘신(神)의 한 수(手)’였다. 갑신정변 당일 밤 피습당한 권세가(權勢家) 민영익을 당시 미국 공사관 의사(醫師)인 호러스 알렌이 헌신적으로 치료해 목숨을 구해준 것을 계기로 개신교의 조선 선교가 시작됐다. 이는 조선 사람 아닌 새로운 한국 사람 탄생과 대한민국의 도약을 낳은 ‘기적’의 출발이었다.”

- 어떻게 그게 가능했나?

“칼뱅주의 신학과 복음주의로 무장한 개신교 선교사들은 추상적인 신학을 가르친 게 아니라 조선의 일상을 개혁했다. 양반과 평민, 여성, 천민, 백정을 차별하지 않고 치료해주고, 한글을 가르치고, 성경을 읽히고, 같은 자리에서 함께 예배를 보게 함으로써 신분차별, 남녀차별을 당연시하던 봉건적 관념의 단절에 앞장섰다. 또 근면, 절제, 청결, 금욕, 기강을 요구함으로써 나태함, 무질서, 미신 극복을 도왔다. 이렇게 다져진 기독교 세력은 독립협회 결성과 만민공동회 활동으로 이어졌고 3.1 독립운동에서 진가(眞價)를 드러냈다.”

◇“19세기말 교회에서 지도자 최초로 직접 선출”

- 선교사들이 조선에 전파한 기독교에 무슨 ‘마력’이라도 있었나?

“장로교와 같이 전형적인 칼뱅주의 교파에서는 일반 신자들이 장로를 뽑고 장로들이 목사를 뽑는다. 지도자를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선출하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최초로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뽑은 것은 1948년 총선이 아니라 19세기말 조선 최초의 장로교회에서 장로 선출에서였다. 한국 민주주의는 이때 시작된다. 칼뱅주의는 또 자본주의를 가능케 한 ‘근대적 정신’의 원천이다. 칼뱅주의로 종교의 자유와 독립을 쟁취한 네덜란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미국은 모두 문자 해독률 상승, 국가와 사회 기강 확립, 합리적·실용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세계적 부국(富國)이 됐다.”

한복을 입은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선교사. 미국 출신 감리교 목사로 한국 선교회를 창설하고 배재학당을 설립해 한국 근대화에 헌신했다.(사진=조선일보 DB)

함 교수는 이어 말했다.

“1602년 설립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역사상 최초로 왕실이나 귀족, 부호들만이 아닌 일반인들도 투자하는 주식회사였다. 이 회사의 1620년 시가총액은 오늘날 환율로 환산했을 때 7조9000억달러를 넘어 2020년 세계 최대기업인 애플(시가총액 1조8000억달러) 보다 3배 이상 컸다. 유럽이 봉건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사상적 분수령이었던 캘뱅주의는 조선에서는 성리학적 봉건주의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촉매 역할을 했다.”

◇“친미 기독교파와 친일 개화파 연합해 근대화”

- 친미 기독교파 세력이 반일(反日) 독립 운동도 이끈 것 같다.

“그렇다. 일제 시대에 친미 기독교파는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대중적 조직을 갖추고 저항하는 세력이었다. 교회는 식민통치하 조선의 청년, 학생, 지식인들이 민족의 ‘해방’과 ‘구원’을 설파할 수 있는 유일한 연단(演壇)을 제공했고 같은 신념과 목표 하에 똘똘 뭉칠 수 있는 제도적 틀과 연계망도 제공해주었다.

좌옹 윤치호, 월남 이상재, 고당 조만식, 남강 이승훈 선생을 비롯해 수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특히 교육·문화·언론 분야에서 민족혼(魂)을 일깨우고 자강과 독립에 앞장섰다.”

함 박사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한반도의 북쪽 절반은 소련, 남쪽 절반은 미국의 세력권에 들어가면서, 친미 기독교파들은 친일 개화파들과 연합해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이룬 중심 세력이 됐다”고 말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한국의 역대 대통령 11명 가운데 이승만, 윤보선, 김영삼, 이명박 등 4명이 개신교 신자였다. 1970년대 반(反)독재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함석헌, 장준하, 강원룡, 정일형 등도 모두 개신교 신자였다. 오늘날 한국은 세계에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해외에 기독교 선교사를 많이 파견하는 나라이다.

◇“지금 집권 세력은 친중파와 민족주의파의 연합”

- 2021년 지금 대한민국은 다섯 개의 유형(친중, 친일, 친미, 친소, 민족주의파) 가운데 누가 주도하고 있나?

“지금 ‘친중’이란 용어만 중립적으로 여겨질 뿐 ‘친미’나 ‘친일’은 반역자 또는 매국노처럼 부정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친일과 친미는 적폐 대상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집권세력은 친중 위정척사파와 인종적 민족주의파의 강고한 연합체에 가깝다. 최근 3~4년 부쩍 많이 사용되는 ‘우리 민족끼리’라는 단어가 이를 보여준다.”

- 친중파와 인종적 민족주의의 결합체가 미칠 영향은?

“이들은 개방을 꺼리는 폐쇄적 민족주의로 국수주의(國粹主義)에 가깝다. 북한 주체이론과 비슷한 측면도 있다. 그래서 위험하고 아슬아슬하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으로 국가 활력이 크게 떨어진 것은 ‘다시 닫힌 나라’가 됐기 때문이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일본에 제3의 개국(開國)이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나. 등소평이 ‘개혁개방’ 정책으로 활짝 열었던 중국도 시진핑이 ‘중국몽’이라는 이름 아래 닫고 있다.”

함 박사는 “앞으로 5~10년 넘게 우리나라 집권 세력이 계속 ‘친중(親中)친북(親北)’ 노선으로 폐쇄와 국수를 지향한다면, 그 종착점은 어디이겠나? 한국의 미래가 매우 어두울 것”이라고 말했다.

◇“공산당 독재체제 중국의 미국 추월은 불가능”

- 일각에선 “미국은 지는 해, 중국은 뜨는 해”라며 “친중(親中) 노선이 옳다”고 주장한다.

“바깥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얘기이다. 적어도 중국이 공산당 독재체제를 유지하면서 미국을 추월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중국공산당의 권위주의와 디지털 독재는 자유·인권·민주라는 인류보편 가치와 정면 배치될 뿐 더러 효율성도 떨어진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대중 통제 능력은 전체주의국가가 가장 뛰어나다. 그러나 바이러스를 궁극적으로 퇴치할 백신 개발과 보급은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 시장의 역동성이 보장되는 미국과 영국, 독일이다.”

- 5개의 한국 사람 유형 가운데 어느 유형이 한국 사회의 표준이자 주도 세력이어야 할까?

“20세기초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을 때 우리 선조들은 한 세대 넘게 전 세계로 흩어져 완전히 다른 이념과 가치관, 세상을 믿으며 각자 장렬한 독립 투쟁을 하다가 귀국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관한 합의를 못하고 있다. 이제라도 ‘한국 사람’,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놓고 심층적인 토론과 연구, 담론이 있었으면 한다.”

◇“유년 때부터 한국인의 정체성에 관심”

함재봉 박사의 할아버지는 법률가이자 개신교 목사로 3·1 만세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48인 중 한 명인 함태영 전 부통령(3대)이고, 아버지는 학자이자 외교관으로서 1983년 10월 미얀마 아웅산 폭탄테러사건 때 순직한 함병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다.

아버지의 유학 시절 미국에서 태어난 함 박사는 유네스코본부 국장, 미국 남가주대(USC) 교수,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 등으로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외국에서 살았다. 연세대 교수와 아산정책연구원 원장도 지냈다.

함 박사는 “아시아 사람이 미국에 많지 않던 1960년대 유년 시절 ‘한국인이 뭐야(What is Korean)?’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한국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싹텄다”고 말했다.

- 20년 가까이 ‘한국 사람 만들기 연구’를 하면서 느낀 바는?

“대한민국과 한국 사람은 해방 이후 정부 수립과 함께 생겨나고 형성돼 지금까지 70여년 밖에 안 된 젊은 나라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것 자체가 기적이다. 만약 대한민국이 지금처럼 잘 돼지 못했다면 이 책을 쓸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20~30대 잡으려면 ‘강한 개인주의' 가야”

- 한국과 일본·중국 세 나라의 근·현대사 흥망(興亡)을 판가름지은 승부처는?

“‘개방'에 임하는 집권층의 자세라고 본다. 일본은 전통을 지키기 위해 서양과 싸우다가 서양의 힘을 깨닫고 전면 근대화로 돌아서 전통을 지키고 근대화에도 성공해 강대국이 됐다. 중국은 중체서용(中體西用), 동도서기(東道西器)로 절반만 근대화를 시도하다가 전통과 근대에 모두 실패했다. 조선은 지도층이 내분만 일삼다가 근대화를 해보지 못한 채 자멸했다.”

- 앞으로 한국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미국과 유럽 선진국처럼 강한 개인, 깨어있는 개인이 필요하다. 아직도 한국 사람들은 학연·지연·혈연에 좌우되고 국가주의에 쉽게 빠진다. 국가 경쟁력도 강하고 뛰어난 개인들에서 발원한다. ‘자유’의 소중함을 자각하는 매력있고 개성 넘치는 일류(一流) 개인들이 훨씬 많아져야 한다. 한국 보수가 20~30대와 사회 전체를 잡으려면 창의성을 보장하는 ‘강한 개인주의(robust individualism)’로 나가야 한다.”

[송의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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