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플러스 논설 고문, 미국 시카고 세계합기도회장
실수의 심층분석 제8화

코리아플러스 논설 고문, 미국 시카고 세계합기도회장

【장계도의 세상만사】 성서 요한 1서 4장 20절은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어찌 사랑할 수 있겠는가.

“아이고 큰일 났네! 오늘이 내 결혼식 날인데 결혼식 시간이 10분이나 지났네.” 그제 서야 정신을 차리고 식장으로 서둘러 차를 몬 신랑은 결혼식 시간에 30분이나 지나서였다. 몹시도 의아해했던 하객들은 그제 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울먹이며 초조해하던 신부 앞에 헐레벌떡 나타난 신랑은 정장이 아닌 노 넥타이 평상복임을 깨닫고 한 하객의 넥타이를 빌려 매고 그럭저럭 식을 마쳤다. 60년대에 이민 와서 죽어라 하고 동양 식품점 운영으로 돈을 꽤 모은 이 신랑에겐 결혼식보다 돈벌이에 정신이 팔려 ‘돈이 최고다.’라는 철학이 이 신랑의 실수였다.

그런데 또 하나 웃기는 것은 모 교포 신문사에서는 성공한 사람들이라는 제하(題下)의 씨리즈에 이 신랑의 스토리가 소개된 것이다. 나는 신문사 편집국에 전화를 걸어 독자 이민 후대(後代)들에게 이민 생활의 성공기준을 오도(誤導)하는 기사가 아니냐고 항의한 적이 있다. 아무튼 나는 사업에 성공(?)한 이 신랑의 그 이후의 생활내용은 모른다. 다만 50대에 암으로 사망했다는 것과 장례 후 상속권을 주장하고 나선 자식을 가진 제2의 여성이 있었다는 사실 뿐이다. 자칭 신앙심이 돈독하다는 한 젊은 여인이 시어머니를 모시고 한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60대의 이 시어머니는 여러 달을 치통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이 치료비를 걱정하는 자식 며느리는 넉넉지 못한 살림이긴 하지만 교회 주일 헌금만큼은 꼬박꼬박 때를 거르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런 며느리를 교회에서는 모범 신앙인이라고 치켜세우고 신문사에서는 훌륭한 신앙인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훌륭한 신앙인이라면 헌금과 치료비 둘을 감당할 수 없는 경우라면 차라리 헌금보다는 시어머니의 이 치료가 우선임을 아는 것이 진정한 신앙인이라는 내용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헌금은 당분간 내지 않아도 되니 어머님 이 치료를 먼저 해 드리라”는 교회 지도자라면 얼마나 더 좋았을 것인가. “헌금은 내면서 시어머니의 이 치료를 등한시하는 것은 하느님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라고 지적해주는 성직자가 대부분일 테지만 그렇지않은 사람도 있구나 싶어 씁쓸한 기분이었다. 혹이나 그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미워하지는 않았는지 또는 며느리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죄책감을 헌금으로 보상받으려 하지는 않았는지 언 듯 생각해 본다. 분명한 것은 헌금을 하면서 시어머니 이 치료를 몰라라 하는 것은 며느리의 실수이고 더 큰 실수는 그런 자신이 훌륭한 신앙인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그렇게 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지만...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고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어찌 사랑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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