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계도의 세상만사 “인지부조화와 임진왜란”
장계도의 세상만사 “인지부조화와 임진왜란”
  • 강경화 기자(adjang7@naver.com)
  • 승인 2021.09.24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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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플러스 논설 고문, 미국 시카고 세계합기도회장
실수의 심층분석 제10-1호
장계도 코리아플러스 논설 고문, 미국 시카고 세계합기도회장

【시카고=코리아플러스】 강경화 기자 = 지난 1966년 미국의 월맹 폭격으로 인한 월남전 확전을 당시 케네디 행정부 국방장관이었던 맥나마라(Robert S. Mcnamara)는 사실상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미 폭격에 가담한 합동 참모회의 끈질긴 확전 필요성 주장으로 월남전 확전은 계속되었으나 결국 월남전은 미국의 패배로 끝이 났고 그후 사가(史家)들은 맥나마라가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확전은 합동 참모회의 큰 실수였다. 그러면 왜 합동 참모회의 측은 확전을 원했을까. 확전이란 곧 자기들의 전략과 폭격을 정당화할 수 있는 구실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맥나마라의 주장을 따른다는 것은 1966년의 월맹 폭격이 오류라고 인정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사회심리학에서는 신념과 행동의 불일치(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로 인한 심적 부담을 해소하려는 합리화라고 한다.

1968년 3월 16일 한 미군에 의한 월남 민간인 대학살 사건이 발생했다. 미군 윌리암 켈리 중위가 밀라이(Mylai) 부락의 무고한 부녀자와 어린아이들(총 504명)을 무참히 사살한 사건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이 선하고 정의롭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학자들의 정설이다. 법정에 선 켈리 중위는 상관의 명령 탓을 앞세웠지만 자신은 정의롭고 인간적이라는 자아개념(신념)은 정반대의 잔인무도한 비인간적인 행위로 인한 인지부조화 탓으로 경험되는 심적 갈등과 고통 감소책으로 오히려 월남인은 인간 이하의 죽어 마땅하다는 자기 정당화가 팽배하게 되었다. 이것이 큰 실수다. 이런 정당화가 편견과 증오감의 심화로 더욱 난폭하고 비인간적인 행위를 자연스레 유발하기 때문이다. 인지부조화 연구 대가인 심리학자 훼시팅거(Leon Festinger)는 합리화란 병든 인격의 방어기제라고 불렀다.

이런 면에서 일본인들의 한국 침략을 비롯한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각종 만행 – 이를테면 관동지진 조선인 학살사건, 창씨개명, 생체실험 또 강제 징용과 종군 위안부 건 등-이런 것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통절한 사과를 한국인들이 기대한다는 것은 좀 어리석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되려 한국은 약소국으로 강국의 보호 아래 문화, 경제적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한국이 덕을 본 것이라고 코웃음 치며 지금도 고이쯔미 준이찌로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말썽이 되고 있지 않은가. 중상모략에 일단 남을 해치고 나면 자기 자신의 부도덕과 잔인성을 뉘우치고 화해의 길을 찾기보다는 그런 자기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되려 편견과 증오심을 키우고 자기 정당화를 옹호해줄 또 다른 세력을 규합해 재도전을 예비하는 것이 인간의 일반적 심성이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당시 조정은 사색 당쟁과 탐욕스런 관리들의 횡포와 무사안일주의에 젖어있었는데 일본 열도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의 가도입명(假道入明:명을 치러가는데 길을 터달라)이라는 오만한 요구에 겁을 먹은 조정은 서인 황윤길을 통신사로 동인 김성일을 부사로 1591년 일본에 파견해 풍신수길의 면목을 정탐토록 했다. 허나, 귀국 후 조정에 고한 내용은 이렇다. 먼저 동인 김성일의 상고(上告)다. “풍신수길은 별볼일 없는 인물이니 병화(兵禍)는 없을 것이외다.” 그러나 서인 황윤길은 달랐다. “살아있는 눈빛에 담력과 지략이 대단한 인물이니 병화를 대비해야 합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 두 신하의 상반된 보고에 병화 방지를 위한 정책수립에 혼선을 탓했지만 그것은 잘못된 발상이다. 이미 10년 전 이율곡의 10만 양병설까지 무시하고 무사안일과 당쟁을 일삼아온 선조와 대신들은 김성일의 보고를 받아들이고 싶었을 뿐이다.

즉 변화를 싫어하는 동인들로 채워진 조정 대신들과 선조는 김성일의 보고내용을 선호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선조와 대신들은 인지부조화로 인한 심적 부담을 덜기 위한 정당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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