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말살당한 곳에는 역사가 없습니다.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은 주검과 같은 존재 입니다.
반세기가 넘도록 기억을 말살당한 4.3은 한국 역사 속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공포에 질린 섬사람들의 스스로 기억을 망각으로 들어가서 죽이는 '기억의자살'인 것입니다.

백비석/사진=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언젠가 이 비에 제주4.3의 이름을 새기고 이르켜 세우리라"

【제주=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제주섬에 찾아온 1945년의 봄 자주독립, 통일된 나라를 열망했던 우리의 역사속에는 제주 4.3사건 1947년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 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 단정 반대를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까지 7년 7개월에 걸쳐 제주도에 일어난 사건이다.

한라산 금족지약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학살되었던 현대사의 비극이다.

 

4.3 상징의 붉은 동백꽃/사진 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붉은 동백꽃은 4.3을 상징하는 꽃입니다. 2~3월이면 툭하고 지상으로 떨어지는 새빨간 꽃송이가 마치 4.3 당시 희생자들을 떠올리게 하여 희생자를 추모하고 화해와 상생의 의미를 부여하기도한다. 제주도를 여행하시다 길가에 붉은 동백꽃을 보게 된다면 제주의 한맺힌 역사인 4.3사건을 되세겨 봄이 어떨까 싶다.

4.3특별법 정부개정법률안은 2021년 3울 23일 공포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제73주년 4,3희생자추념식에 참석한 후, 제주 4.3평화공원 위패봉안실에서 특별법 정부개정안 법령집에 서명했다.

 

군경에 의한 제주전역 초토화 작전/사진=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군경에 의한 초토화작전 감행 토벌대는 1948년 중순부터 1949년 3월까지 약 4개월 동안 해안선에서 5km 이상 떨어진 중산간 마을에 통행을 금지시켜놓고,  위반하는 자에 대해 서는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폭도로 인정하여 총살하고 집집마다 불을 지르고 남녀노소 가림없이 무차별 학살하는 '초토화 작전'을 자행했다.

 

4.3 행방불명 희생자 위령비/사진=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4.3사건의 희생자 중 시신을 찾지 못하여 묘가 없는 행방불명인을 대상으로 개인 표석을 설치해 넋을 추모하는 공간으로,  대부분 4.3사건 와중에 체포되어  각 지역의 형무소로 이송된후  제주,경인,영남,호남,대전등에 수감되었다가 돌아오지 못한 영혼의넋을 애도하기위한  3천9백여명의 표석을 설치한 위영공간이다. 

현재 4.3평화공원에 설치되어있는 위령비는 행방불명 희생자 표석이며, 유가족과 방문객에게 4.3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장소로 조성되어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위패 봉안실/시진=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위령제단은 4.3희생자을 추모하기 위한 공간으로 참배객들이 현화, 분향, 묵념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위패보안실은 4.3의생자 1만4천4백 여명의 위패가 모여져 있으며 희생자의 억울한 넋을 위로하기 위한 추념 공간이다. 

"대통령의 공식사과" 2003년 10월 15일 "국가 공권력의 인권유린"으로 규정한 진상조사보고서가 확정됐고, 10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 권력의 잘못'에 대해 공식 사과를 했다.  4.3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는 처음이다.

 

위령탑과 각명비/사진=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제주 특유의 역동성과 경건함을 가진 제주도의 오름 분화구를 형상화한 공원 중심부에 세워진 위령탑은 4.3당시 가해자와 피해자의 대립을 극복하고 화해와 상생으로 승화하기 위한 인간의 어울림을 표현한 상징이다.

위령탑 주위로 원형으로 세워진 각명비는 1만 4천여 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희생자의 성명,성별, 당시연령, 사망 일시 등을 각명하여 마을별로 배치하였다.

중앙에 고인 물은 4.3사건으로 인한 제주의 액과 살을 씻고 영원한 평화의 시간을 상장하는 조형물이다.

여성들의이중수난/사진4.3평화공원=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끝나지 않은상처- '연좌제' 4.3유족들은 연좌제로 고통받았다. 가족 가운데 누군가 범죄 행위를 저질렀다는 이유만으로 남아있는 가족과 친족에게까지 처벌이 가해지는 경우를 이른바 연좌제라 했다.

4.3 당시 토벌대에 희생되거나 처벌을 받은 이들의 가족들은 취직이나 승진, 입학시험, 해외여행 등 사회생활에서 불이익을 당했다. 1980년 제정된 제5공화국 헌법은 연좌제 적용의 금지를 명문화했으나, 연좌제의 트라우마는 오랜기간 제주사람들을 옥죄였다.

 

각명비/사진=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위령탑을 주위로 원형으로 세워진 각명비는  제주 4.3사건으로  한맺힌 희생자의 넋을 달래고 유족들을 위로하는 한편 후세대에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전하기 위해 4.3희생자로 결정된 14.256명의 성명,성별,당시연령,사망일시 등을  가명하여 마을 별로 배치 하였다.

"한라산" 혓바닥을 깨물 통곡 없이는 갈 수 없는 땅, 발가락을 자를 분노 없이는 오를 수 없는산 제주도에서 ,지리산에서, 그리고 한반도의 산하 구석구석 에서 민족해방을 위해 장렬히 산하해 가신 전사들에게 이글을 바친다. "1987년 4.3을 소재로 시를 썼다가 구속된 이산하시인"

 

제주4.3 위령탑/사진=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순이삼촌" 자정이 넘자 이 집 저 집에서 곡성이 터져 나왔다. 음력 섯달 열 여드렛날 오백위가 넘는 귀신들이 강신하여 한밤중이면 슬픈 곡성이 터졌다.

큰 당숙어른의 목소리가 들려욌다. 순이 삼촌은 죽어도 벌써 죽을 사람이라는 것이다. 밭을 에워싸고 벼락같이 총질하는 속에서 시체 더미에 깔려 살아났으며 그 때 이미 정신이 어긋났으리라는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으로,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제주도. 우리가 아는 제주도는 세계문화유산을 가지고 있고, 맛있는 해산물이 넘쳐나며, 흑돼지와 말로 유명한 곳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주도는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70년이 지난 세월이지만, 아직도 제주도민은 그 아픔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바로 제주 4·3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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