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예상하지 못했던 6ㆍ25 전쟁이 일어났다. 압도적인 화력으로 무장한 북한군은 남쪽으로 진격을 거듭 하고 남한군의 패색이 짙어져만 가자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애월중학생은 책과 펜을 대신하여 총을매고 전쟁에 참전하여 전쟁의 참담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애월중학교 송창선 교장선생님/사진=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교장 선생님과 학도병 출정에 관한 인터뷰를 하고있는 라기영 기자

【제주,홍천=코리아플러스】김종필, 라기영 기자= 애월중학교 학생들은 친구들과 수업을 듣던중  6ㆍ25 전쟁이 일어나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병역의무 대상이 아님에도 자진입대하여 학도병으로 겨우 2주남짓 훈련을 받은 후 전쟁에 뛰어 들어야만 했다.

재학 중 6ㆍ25전쟁의 발발로 출정하는 첫 회기는 3회 졸업생들이었으며, 4회 졸업생들이 그 뒤를 이었으나 군번도 부여되지 않았으며 몸에 맞지도 않는 군복을 지급받거나 지급받지 못한 학생들은 학교 교복을 입고 적들과 싸웠다.             

애월중학교 학도병 출정명부/사진=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출정학생은 1950년에는 53명, 51년 9명, 52년 2명, 53년 2명으로 모두 66명 이었으며,그들 중 2명은 전장에서 산화하여 호국영령이된 고(故)박재진, 송두영 전우 두명이 전장에서 돌아오지 못하자 참전 학생들은 호국영령이 된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힘든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전선으로 향하는 출정식/사진= 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송창선 교장선생님은 애월중학교에는 출정명부가 있으며, 학교자료에 육군인지 해병인지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어 자료수집에 도움이 되었다.  

그때 당시에 보훈청의 기록으로는 미비한 부분이 있어 참고만 하였으며, 학교 출정명부 기준으로 66명의 추념비에 이름이 새겨졌다고 한다. 

애월중학교 책읽는 학생/사진=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현재 학도병으로 출정했던 분들이 3명이 생존해 계시며 기억이 총명할때 추념비를 세워야 의미가 있을것 같다고 했다.

 교장 선생님은 애월중 임기동안 학도병 추념비를 하루빨리 추진해야 겠다고 결심하여 기관, 총동창회 지역에 도움을 청해 많은 노력끝에 추념비가 세워졌으며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고 한다. 

 6ㆍ25 추념비 건립에 즈음하여 매사에 선구자는 존재하며 사회가 인정할 만한 정의로운 일에 마음을 품고 실행하면 나라의 초석이 되어 미래에 자랑거리며 역사적 결과물이 될것이다.

애월중학교 교장선생님, 총동창회장을 비롯 모든 지역분들께 경의를 표한다며 학도병으로 참전하여 생존해 계시는 김재문 학도병의 감사 인사글을 낭독하며  가슴이 뭉클 했다고 한다.

애월중학교 교훈/사진=코리아 플러스 김종필 기자
학교 정문에 들어오면 교훈이 먼저 맞이 한다. 처음 교훈을 보았을때 "순진하게 배우자"라는 글귀가 "맑고 깨끝하자" 차분하게 책을 대하자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교장 선생님의 애쓴 보람으로 잊혀져가던 애월중 학도병이 세상에 나와 제 조명 되고 있으며  힘든 과정은 끝내 말씀없이 과묵하시며 학도병에 대한 예우일것 같다며 숙연해하셨다.

 애월중학교 추념비가 세워진 옆으로 올래길 14코스가 지나가게 되어 있어 교육청에 의뢰 하여 쉼터를 조성할 목적으로 조경전문가 토대로 선생님과 학생들이 한마음이 되어 나무를 심는 뜻깊은 행사였다고 한다.

 올래길 탐방하다가 잠시 벤치에 앉아 휴식을 하면서  애월중 학도병 추념비에 대한 자녀들에게 교육도 할 수 있도록 4~5년 뒤에는 쉼터다운 모습을 갖추어질 것 같다고 한다.

애월중학교 아름다운 교정/사진= 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애월중학교는 1947년 6월 18일 설립 되었으며, 현재 전교생 262명 남126명, 여136명이 미래의 꿈을 향하여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하며 미래에 나라 기둥이 될것이라 하였다.  

 교정 상단에 보면 "디혼디(다함께) 성장하는 행복한 배움터" 글귀처럼 아름답고 깨끗한 제주 혁신학교로 지정되었으며 제주도 학교의 귀감이 되고 있다.

 애월중학교 중심으로 애월유치원, 애월초등학교, 애월고등학교 까지 한곳에 모여있어 학교 선택이 용이하며  교육 지역으로는 으뜸이 아닐까 싶다.

애월중학교 "아름다운 바다풍경" 벽화/사진= 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애월중학교는 바다를 등지고 있어서 인지 학교 바다속 풍경을 벽화에 선생님과 학생이 한마음으로 고래,거북이,해마등 숨은그림을 찾듯이 눈길이 끌려 그림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6ㆍ25출정학생추념비/사진=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꿈꾸던 열여섯 홍안의 소년은 백척간두 나라의 운명앞에 책과 펜을 놓고 분연히 일어섰다. 

나라잃고 꿈과 미래가 있으랴, 임이여 그대 어느 산하에 누워 계신가, 목숨주고 지켜낸 자유 대한민국을 태극기 퍽럭이는 모교의 교정에 "생즉사,사즉생" 호국충혼 그 넋을 기려 추념비를 세우노니 민족의 가슴에 영원히 사시라

 "갈수록 빛나는" 김종호 시인은 6ㆍ25전쟁당시 1950년부터 53년 7월 휴정협정이 체결되기 전까지 총 66명의 애월중학생들의  출정기념비에 이름을 새기고 전쟁중 산하한 두학생의 넋을 노래한 것이다.  

2학년2반학생/사진=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학도병들이 출정하기전 교가에 "그이름도 빛난다 애월중학교" 를 힘차게 부르며 전장터로 떠났던 선배님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애월중의 자부심과 긍지로 선배님의 희생을 가슴깊이 새기며 애월중의 학생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며 애월중 파이팅! 하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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