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코리아플러스】 강경화 기자 = 지난 17일 주말에 김흥태 코리아프러스 부사장과 권달혁 전국본부장, 이동환 코리아플러스 대구ㆍ경북본부장과 장영래 대표는 경북 안동을 방문했다.

일정은 대구에서 안동, 김천으로 돌아오는 일정 이었다.

이 날 안동 김ㆍ권ㆍ장씨의 삼태사묘를 찾았다.

그 가운데 고려를 세운 왕건으로 부터 전국의 장씨를 안동 장씨로 성씨를 하사 받았다는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었다.

안동 장씨 (安東 張氏) 시조 장정필(張貞弼)로 경상북도 안동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안동 장씨의 시조는 충헌공(忠獻公) 장정필(張貞弼)이다. ‘안동장씨대동속보(安東張氏大同續譜)’에 따르면, 그의 처음 이름은 장길(張吉)인데, 888년 중국 절강성 소흥부에서 대사마대장군(大司馬大將軍)인 장원(張源)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한다.

5세 때 아버지를 따라 우리나라에 왔다가 18세에 다시 당나라에 들어가 문과에 급제했고,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내다가 다시 환국했다.

930년에 고창전투에서 태조 왕건을 도와 견훤의 군대를 대파한 공으로 삼중대광보사벽상공신 태사(三重大匡保社壁上功臣太師)에 오르고 고창군에 봉해졌다고 전하고 있다.

안동 장씨의 시조는 후삼국 고창(古昌, 지금의 안동)의 호족 장정필(張貞弼)이다.

그는 고려 태조가 후백제의 견훤(甄萱)을 정벌할 때 고창군(古昌郡, 지금의 안동)에서 김선평(金宣平:新安東金氏의 시조)·권행(權幸:安東權氏의 시조)과 함께 전공을 세운 삼태사(三太師) 중의 한 사람으로서 《안동장씨세보》에는 그의 선대(先代)가 중국인이며 신라 말기에 한국으로 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 말 조선 초의 인물로는 무신인 장사길(張思吉)·장철(張哲) 부자가 있었다.

장사길은 의주(義州)의 토호로서 1390년(고려 공양왕 2) 밀직부사(密直副使)로 이성계(李成桂)의 위화도회군에 공을 세워 회군공신(回軍功臣)이 되었고, 조선 개국에도 공을 세워 개국공신 1등으로 중추원지사에 올랐다.

장철은 고려 말기 무과에 급제하여 1388년(우왕 14) 아버지와 함께 위화도회군에 공을 세웠고 첨절제사(僉節制使)·영흥부사(永興府使) 등을 지냈다.

학자로는 장흥효(張興孝)·장세량(張世良) 등을 들 수 있으며, 홍경래의 난 때 크게 공을 세운 장몽열(張夢說)·장낙현(張洛賢) 부자도 있다.

[참조:네이버 지식백과] 안동장씨 [安東張氏]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분파

화산군파(花山君派), 부령군파(扶寧君派), 예산군파(禮山君派), 청송군파(靑松君派), 지례백파(知禮伯派), 진천군파(鎭川君派), 이천백파(利川伯系), 울진부원군파(蔚珍府院君派), 희양공종파 등과 60개의 소파로 나뉜다.

(참조 안동 장씨 - 한국학중앙연구원, 외부 링크 안동장씨 중앙대종회 Archived 2011년 2월 8일 - 웨이백 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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