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충청프러스] 유평욱 기자 = 충청남도역사문화원은 2010 세계대백제전을 맞이해 30일 국제학술회의가 “교류왕국, 대백제의 발자취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공주대학교 백제교육 문화관에서 3일간의 일정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30일 밝혔다.

이날 국제학술회의장은 개회 첫날부터 백제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아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북새통을 이루었다.

회의는 신형식 교수(서울시사편찬위원장)의 기조발표를 시작으로 노중국(계명대)교수, jonathan w. best(미국 웨슬리언 대학), 이성시 (일본 와세다 대학) 송성유(중국 북경대학) 교수, 윤명철(동국대)교수의 주제발표가 있었고, 주제발표가 끝난 후 이기동(동국대) 교수를 좌장으로 해서 이근우(부경대) 교수, 이강래(전남대) 교수, 주보돈(경북대) 교수, 장인성(충남대) 교수, 강봉룡(목포대) 교수의 심도 있는 종합토론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회의에서는 고대 동아시아에서 백제의 대외 문화교류 및 위상에 초점이 맞춰졌으며, 그에 대해 국내외 저명한 연구자들이 새로운 시각으로 연구 성과를 내놓은 점이 큰 특징이었다.

기조발표에 나선 신형식 교수(서울 시사편찬위원회 위원장)는‘해상왕국 대 백제’의 교류사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그에 대한 연구 성과를 정리했다.

그는“백제는 고구려와 신라의 견제속에서 생존의 길을 바다(서)로 나감으로서 서행의 중요성을 비로소 인식함으로서 우리 역사상 최초로 해외 진출을 통한 국제화의 필요성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그는 백제의 해양 교역에 대해“고대 동양 3국의 국가적 성장에서 교량자의 역할에 의미를 부각시켰으며, 서해의 지중해적 성격을 바탕으로 서해문화권을 형성한 주인공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서해는“해양대국으로 도약하는 백제의 꿈을 실현해 주었으며, 동아문화권의 한 틀을 마련함은 물론 일본문화를 육성시킬 수 있었던 바탕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노중국 교수(계명대학교)는 백제는 고대 동아시아 공유 문화권 형성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이는 백제가 중국문화에 일방적으로 편입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정체성을 지니면서 북방문화의 체질을 바탕으로 중국문화를 받아들여 자기화하고 이것을 주변국들에게 전해주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이날 발표에서는 백제가 자국중심의 천하관을 형성한 모습과 인적 교류를 통해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여 자기 문화의 수준을 높이고 이를 다시 신라, 가야 특히 왜 등에 전파해주는 몇 가지 모습인 대왕체제, 왕족파견, 지식인, 기술자 파견, 관부제와 사서제, 의약 및 역법, 천문지식을 공유 등을 중심으로 분석했다

Jonathan W. Best(미국 웨슬리언 대학)은 삼국사기백제본기 기년(연대)에 문제가 있는 기사(5개 기사)들을 ‘비역사적 날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즉 그것들은 백제사의 믿을만한 역사적 사건들의 기록과정에서 ‘단순한 연대 오류를 빚은 것들’이라고 했다.

Best 교수는 거론된 5개의 기사 가운데 개루왕과 책계왕대의 편년은 믿을 수 없는 것들이며, 한성 함락 이후 세계의 기사 역사에 앞선 시기의 실제 사건을 편년 하양 조정했다고 한다.

지난 40여년 간 Best 교수는 중국과 일본의 문헌, 고고학과 금석학의 정보들을 망라하여 문제적 기사들의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비판적 심층 분석을 추구했다.

일찍이 동아시아 세계의 문자 문화 교류 문제에 주목해 연구를 진행한 이성시 교수(일본 와세다 대학교)는 이날 발표에서는 최근 출토된 몇몇 백제 목간 자료를 근거로 일본의 문서행정이나 문자자료가 그와 관련성이 매우 깊다는 사실을 논증해 보려는 시도였다.

그는 기존 사서에서 그런 기사가 보이기는 했지만 그를 입증할 수 있는 물증이 별로 없었던 탓에 그를 둘러싼 한․일 연구자 사이에는 일정한 입장 차이를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발표자는 목간에 보이는 몇몇 실례를 통해 백제와 왜의 영향 관계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송성유 교수(중국 북경대학교) 한․중․일 삼국의 문헌 사료에 입각해 백제와 중국 역대왕조의 외교와 문화교류를 개괄하고 그 특징을 밝히고자 했다고 밝혔다.

그는 백제사의 특징으로 관대문화(冠帶文化)를 들고 있는데 관대문화는 백제 관품의 명칭에서 유교적 덕목인 은(恩)과 덕(德)이 많은 점과 백제에서 관위의 고하를 관모의 장식과 색깔로 나타낸 점을 나타낸 말이라고 설명했다.

송 교수는 중국 동한시기부터 수․당대까지의 장기간에 걸친 백제와 중국 고대 왕권의 외교관계를 서술하고 다변화된 외교가 이 시대의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백제가 중국의 선진문화를 수용하는데 사람의 교류가 중요했음을 지적했다.

예컨대 이는 요동 태수 공손탁이 그의 딸을 백제 구수왕의 처로 삼았다는 기사는 백제의 왕족이 중국여성을 처로 삼아서 백제문화의 수준이 단기간에 높아졌던 점을 반영한 이야기로 이해하고 있다고 제시했다.

윤명철 교수(동국대학교)는 육지 중심적 역사인식과 연구의 관행을 반성적으로 비판하고 해양사의 중요성을 제기하면서 이른바 ‘해륙사관’을 주장했다.

이러한 윤 교수의 거시적 이론은 “기왕의 육지중심의 역사인식체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적 준비 틀로서 의미 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본다”며 “그간 지나치게 지엽말단적인 사안을 둘러싸고 소모적 논쟁에 빠지는 경향이 없지 않았던 고대 사학계에 던지는 시사점 역시 적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만 “이러한 노력은 미시적이고 실증적인 역사 고증작업의 뒷받침이 이어져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어 앞으로 이론과 실증의 관계가 체계적으로 정립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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