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를 동포라 부르지 못하는 고려인 4세

【안산=코리아플러스】손경훈 기자 =“나는 분명히 고려인인데, 왜 코리아에 살 수 없는 건가요? 언제까지 유령처럼 떠돌아다녀야 하나요?”

경기 안산시 단원구에 사는 18살 소녀 따냐는 고려인 4세다. 2014년 엄마(45)와 함께 우즈베키스탄에서 ‘할아버지의 나라’ 한국에 왔다.

말 한마디 못하는 낯선 땅이지만, 따냐는 우즈베키스탄에서처럼 된장찌개와 김치를 먹어도 놀림을 받지 않아 좋았다.

어디를 둘러봐도 자신과 꼭 닮은 검은 머리카락과 눈을 가진 사람들이 넘쳐나기에 행복했다. 따냐는 이제 피시방도 노래방도, 떡볶이와 쫄면의 맛에도 익숙해졌다.

하지만 만 19살이 되는 내년이 되면 다시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가야 한다.

고려인 3세인 엄마가 재외동포법에 의한 방문취업비자(H-2)로 한국에 왔기 때문이다. 엄마를 따라 동반비자로 입국한 따냐는 만 19살까지만 국내 체류가 허용된다.

현행법상 고려인 4세는 동포가 아니다. 그저 ‘검은 머리 외국인’일 뿐이다.


■ 동포를 동포라 부르지 못하는 고려인 4세

고려인의 사전적 의미는 러시아를 비롯한 옛 소련 국가에 거주하면서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한민족 동포를 뜻한다.

블라디보스토크(연해주) 지방에 주로 거주하던 이들은 1937년 9월부터 시작된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 이주정책에 의해 러시아는 물론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아제르바이잔·조지아(그루지야) 등으로 흩어졌다.

80년 전 일이다.

당시 강제이주 대상이던 조선인은 ‘고려인 1세대’가 됐고, 이들이 낳은 후손들은 고려인 2~3세를 이루며 옛 소련 땅에 정착했다.

그러나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고려인 2~3세들은 새로운 노동시장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최근에는 루블화 가치 하락과 이에 맞물린 중앙아시아 국가의 경제 악화 영향으로 한국 땅을 밟는 고려인 후손들이 급속하게 늘고 있다.

국내 체류 고려인은 4만여명으로 추정되고, 이 가운데 1만2천여명이 반월·시화공단 등 중소형 공장이 몰려 있는 안산지역에 살고 있다.

흔히 카레이스키 또는 카레이츠라고 불리는 고려인 가운데 1∼3세는 1992년 제정·공포된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약칭 재외동포법)’에 따라 재외동포의 지위를 얻었다.

이들은 방문 취업비자인 에이치(H)-2 비자를 얻거나 재외동포로서 일정 기간 한국 체류가 가능한 에프(F)-4 비자를 받아 입국해 살고 있다.

많은 관심과 국가의 정책이 하루 속히 이루어져서 좋은 혜택을 받도록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손경훈 기자 skhcjsaud8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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