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코리아힐링페스티벌 감원도 삼척 오십천과 죽서루

▲ 【삼척=코리아플러스】 장영래 기자 = 오십천 가파른 절벽위에 서 있는 죽서루. 오십천 푸른 강물과 하나 돼 관동 팔경 중 제 1경으로 꼽힌다. / 코리아플러스 장영래 기자
【삼척=코리아플러스】 장영래 기자 = 오십천 가파른 절벽위에 서 있는 죽서루. 오십천 푸른 강물과 하나 돼 관동 팔경 중 제 1경으로 꼽힌다. / 코리아플러스 장영래 기자
【삼척=코리아플러스】 장영래 기자 = 오십천 가파른 절벽위에 서 있는 죽서루. 오십천 푸른 강물과 하나 돼 관동 팔경 중 제 1경으로 꼽힌다. / 코리아플러스 장영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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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코리아플러스】 장영래 기자 = 오십천 가파른 절벽위에 서 있는 죽서루. 오십천 푸른 강물과 하나 돼 관동 팔경 중 제 1경으로 꼽힌다. / 코리아플러스 장영래 기자
【삼척=코리아플러스】 장영래 기자 = 오십천 가파른 절벽위에 서 있는 죽서루. 오십천 푸른 강물과 하나 돼 관동 팔경 중 제 1경으로 꼽힌다. / 코리아플러스 장영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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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코리아플러스】 장영래 기자 = 오십천 가파른 절벽위에 서 있는 죽서루. 오십천 푸른 강물과 하나 돼 관동 팔경 중 제 1경으로 꼽힌다. / 코리아플러스 장영래 기자
【삼척=코리아플러스】 장영래 기자 = 오십천 가파른 절벽위에 서 있는 죽서루. 오십천 푸른 강물과 하나 돼 관동 팔경 중 제 1경으로 꼽힌다. / 코리아플러스 장영래 기자
【삼척=코리아플러스】 장영래 기자 = 오십천 가파른 절벽위에 서 있는 죽서루. 오십천 푸른 강물과 하나 돼 관동 팔경 중 제 1경으로 꼽힌다. / 코리아플러스 장영래 기자
【삼척=코리아플러스】 장영래 기자 = 오십천 가파른 절벽위에 서 있는 죽서루. 오십천 푸른 강물과 하나 돼 관동 팔경 중 제 1경으로 꼽힌다. / 코리아플러스 장영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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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코리아플러스】 장영래 기자 = 오십천 가파른 절벽위에 서 있는 죽서루. 오십천 푸른 강물과 하나 돼 관동 팔경 중 제 1경으로 꼽힌다. / 코리아플러스 장영래 기자

 

【삼척=코리아플러스】 장영래 기자 = 오십천 가파른 절벽위에 서 있는 죽서루.

오십천 푸른 강물과 하나 돼 관동 팔경 중 제 1경으로 꼽힌다.

삼척 오십천은 삼척시와 태백시의 경계인 백병산(1259m)에서 발원한다.

강원도 태백은 함백산, 백병산, 태백산, 금대봉, 매봉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해발 750m의 고원도시다.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인 강원 태백에서는 7월 21일 개막행사 및 합수제를 시작으로 8월 5일까지 ‘2018 태백 한강·낙동강 발원지축제’가 열렸다.

여름 평균 22도의 시원한 기후로 열대야와 모기가 없다.

남한강과 낙동강의 근원이 되는 매봉산 위에서 바람개비처럼 돌아가는 매봉산풍력발전단지와 고원지대의 자연과 시원함을 담아 평화로운 휴양을 즐길 수 있는 태백고원자연휴양림과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 철암탄광역사촌, 태백석탄박물관, 태백체험공원 등 태백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오십천은 삼척시가지를 지나 동해안으로 흘러들며 강으로서의 생을 마감한다.

길이가 48.8km로 비교적 짧지만 하천의 곡류가 매우 심해 하류에서 상류까지 가려면 물을 50번은 건너야 한다고 해서 이름이 오십천이다.

하천 협곡의 암벽은 중생대 백악기에 생성된 뒤 오랜 기간 하천 작용으로 퇴적되고 변형돼 곳곳에 절경을 연출하고 있다.

죽서루는 삼척시 성내동에 있다. 관동 8경 중 제1경으로 꼽힌다. 조선시대 삼척부의 객사였던 진주관의 부속건물이었다.

지방에 파견된 중앙관리들이 묵던 숙소의 부속건물로서 접대와 향연이 펼쳐지던 곳이다.

고려 명종대(1171~1197)의 문인인 김극기의 시 중에 죽서루 관련 시가 전해오는 것으로 봐서 12세기 후반에 창건됐으리라는 추측은 가능하다.

또 이승휴 안성 김구용 정추 등이 죽서루 관련 시를 남긴 것으로 봐서 죽서루는 14말까지는 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죽서루는 버려졌다가 조선 태종 3년(1403) 당시 삼척부사였던 김효손의 의해 복원됐다.

죽서루는 고려와 조선을 관통하면서 1,000년 동안 당대 최고의 시인과 묵객이 줄줄이 찾아와 시를 읊고 그림을 그린 명소다. 죽

정철은 45세에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했다. 그는 내금강과 외금강, 관동팔경을 유람한 뒤 조선가사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관동별곡〉을 지었다.

죽서루에 올라 시를 남겼다.

고려시대 민족의 대서사시인 ‘제왕운기’를 썼던 이승휴가 죽서루를 세웠다는 설도 있다.

율곡 이이는 ‘죽서루에서 시를 차운하다’라는 시에서 감탄사를 늘어놓았다.

조선 숙종과 정조도 관동의 아름다운 경관에 푹 빠졌다. 왕

정조는 김홍도를 시켜 금강산 일대 4개군의 명승지를 그리게 했는데 이 그림첩이 ‘금강사군첩(金剛四郡帖)’이다.

죽서루의 또 다른 명물은 현판이다.

5개의 현판이 있는데 누각 정면에 있는 ‘죽서루’와 ‘관동제일루’는 숙종 36년 삼척부사 이성조가 쓴 글씨다.

누각의 동쪽 내부에 있는 ‘해선유희지소(바다신선이 노니는 곳)’는 헌종 3년 삼척부사 이규헌이 썼다. 남쪽에 있는 ‘죽서루’ 현판은 누가 썼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미수 허목이 쓴 죽서루 안 ‘제일계정’ 현판. 전서체의 대가인 그가 쓴 유일한 행초체 현판이다.

누각 내부 서쪽의 현판, 강이 내려다 보이는 쪽에 걸려있는 ‘제일계정(시냇가에 있는 정자로는 제일)’ 현판은 미수 허목이 쓴 글이다.

허목은 그림과 글씨 문장에 능했는데 전서체로는 동방의 1인자로 꼽힌다. 그의 전서체는 ‘미수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독특하고 독보적이다.

그런 그가 ‘제일계정’ 현판을 유일하다시피 한 행초체로 써 눈길을 끈다. 날아갈 듯이 미끈하고 호쾌한 필법이다. 네

장의 판자를 붙이고 테두리를 둘렀다.


죽서루는 자연 암반에 세워진 독특한 누각이다.

허목이 삼척부사로 부임해왔던 때는 그의 나이 68세였다. 남인의 영수였던 그는 서인의 영수 송시열과의 ‘1차 예송논쟁’에서 패배해 삼척부사로 좌천됐다.

그는 삼척에서 향약을 만들어 교화에 힘썼고 ‘척주동해비’를 세워 오십천으로 넘나들던 동해의 파도를 잠재웠다.


동계에는 경치가 뛰어난 곳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곳이 여덟 곳 있으니 곧 통천의 총석정 고성의 삼일포와 해산정, 수성의 영랑호, 양양의 낙산사, 명주의 경포대, 척주의 죽서루, 평해의 월송포다.

허목은 2차 예송논쟁에서 남인이 승기를 잡음에 따라 삼척생활을 끝내고 다시 조정으로 나와 대사헌 이조판서를 역임했다.

삼척으로서는 예송논쟁 덕에 제일계정, 척주동해비 같은 귀중한 문화재를 얻게 됐다.

죽서루는 주춧돌 대신 자연암반과 자연 초석을 이용하여 세운 2층 누각 형태의 독특한 건축물이다.

자연 상태를 최대한 활용하다 보니 위층의 기둥은 20개인데 비해 아래층의 기둥은 17개이고 기둥의 길이도 각기 다르다.

양쪽 측면의 칸 수도 다르다.

죽서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인데 이는 북쪽에서 봤을 때 그렇고 남쪽에서 보면 측면이 3칸이다.

기둥이 하나 더 있다. 앞서 말했듯이 자연암반 위에 누각을 세우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한다.

또 주 출입구를 남쪽 면으로 하기 위해서 의도한 것이라고도 한다.

좌우 누각의 천연암반을 활용해 2층 누각에 필수적으로 있어야 할 사다리가 없다는 것도 특징이다. (출처=김동완 자유기고가)

한편 삼척시는 현재 관동팔경 제1루인 죽서루 주변 동헌(東軒)과 내아(內衙), 객사(客舍) 등 옛 삼척도호부의 관아 유적을 복원한다.

아울러 출렁다리와 뱃놀이터 등을 조성해 오십천과 연계되는 풍류명소로 만드는 작업도 병행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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