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1789~1856)는 평생에 걸쳐 벼루 10개를 밑창 냈으며, 붓 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 정도로 자신만의 예술계를 개척해나갔다

 

여름에 그려진 추사 김정희 새한도/사진=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제주= 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절해고도인 제주도 대정고을 유배지 한 칸 초가에 갇혀버린 추사 김정희는 유배형에 처해지자 주위에  모두가 떠나버린 고독의 외로움과 절망 속에 피어오른 조선 선비의 절정 이상과 혼이 담긴 그림 "새한도" 이다.

그림 새한도의 오른쪽 소나무는 추사의 외롭고 힘없는 늙은 노송의 끝부분 솔잎은 작은 희망을 그렸으며, 늙은 노송의 그늘이 되어주는 왼쪽 푸른 잣나무는 제자 이상적을 표현 했다. 왼쪽의 잣나무 두 그루는 멀리서 지켜봐 주는 많은 제자들의 모습을 담았으며, 윤곽으로 된 집을 간략한 필체로 그려냈다.

 

추사 김정희 동상/사진= 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한 폭에 두루마기를 펼치면 국보 제180호 추사 김정희의 "새한도" 그림에 이어 발문이 단정하게 쓰인 발문은 길게 쓰였으며, 새한도 너비 24cm 길이 14m 새 한도는 감상기를 써 붙인 재형이 붙어있다

추사 김정희는 55세 되던 해 안동 김씨 세력과 벌이던 정치세력에서 밀려나 1940년 제주 대정읍 한 초가에 유배 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위리안치" 가시 울타리를 두른 집안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최고의 유배형에 처해진다.

추사 김정희 유배지 초가/사진= 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추사가 머물렀던 원래 집은 제주 4·3항쟁 때 불타버려 후에 복원을 했는데 제주도 민가의 원형을 잘 보여준다..

추사의 제자이자 역관이었던 우선 이상적(1804~1856)은 중국 연경의 소식과 귀중한 서책들을 제주로 유배된 스승에게 위험을 감수하고 전달하였다.

 

천경사경편/사진= 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하늘이 개이자 저녁 햇살이 두루 퍼지고 산에서 흘러나온 저녁 구름이 낮게 깔린다. 옹기종기 사이좋게 모래톱엔 기러기가 내려앉고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은 산에서 멀어진다.

촌노인은 어린목동을 염려하여 지팡이 짚고 사리문에;서 기다린다는 석감 김정희는 19세기에 고독한 생활을 하며 자연의 한적한 정취를 노래한 천경가경편을 부채에 기록한 작품이다.

홍도촌사/사진= 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행서체로 쓰인 현판 탁본으로 사랑이 있는 집이라는 뜻이다.

추사는 새 한도에 거칠고 메마른 느낌을 주는 초목 법은 먹을 팥죽처럼 진하게 갈아서 먹의 짙고 옅음이 없기 때문에 붓의 속도가 빨라지면 옅어지고 느리면 진해지는 것이 초목 법은 필력이 경지에 오른 사람만이 그릴 수 있다.

새한도 그림속 집/사진= 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제주 추사 김정희 기념관 건물은 새한도 그림속 집과 똑같이 지었다.

추사는 정조 10년(1786), 예산에서 당대 명문가였던 경주 김씨 월성위, 영조의 부마의 손자인 아버지 김노경과 어머니 기계 유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24세에 아버지를띠라 청나라에 사신으로 동행하여 청나라 최고의 학자 옹방강, 완원 등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고증학을 배우게 된다.  

제주 추사관 추사 김정희 비문/사진= 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새한도는 이상적 사후 그의 제자였던 김병선이 물려받았다가 일본의 추사 연구가였던 후지츠카치카시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1944년 서화 수집가였던 손재형은 새 한도를 되찾기 위해 태평양전쟁의 한복판이던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후지츠카를 만나 몇 달간의 설득 끝에 새 한도를 넘겨받을 수 있었다.

178년이란 긴 시간 동안 머나먼 여정을 떠났던 "새한도"는 지난 2020년 송창근이 국가에 무상 기증하면서 마침내 국민의 품으로 완전히 돌아오게 되었다.

공산무인수류화개/사진= 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추사는 55세 되던 1840년부터 약 9년간의 제주도 유배를 겪고 풀려나 과천에서 공산무인 수류화개 "빈 산엔 사람이 없는데, 물은 절로 흐르고 꽃도 절로 피네" 남기고 생활하다 철종 7년(1856) 71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겨울 눈덮힌 새한도/사진= 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추워진 날씨만큼이나 스산해지고 작은 이익 앞에서 옳고 거름이 뒤집어지고 눈앞에 권세와 척도가 되어버린 후박한 세상 속에 초졸한 그림 한 장 새한도의 울림이 아픔을 표현 했다.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느꼈듯이, 김정희 자신도 어려운 지경을 만나고 나서야 진정한 친구의 의미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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