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오씨 시조(長興吳氏 始祖)는 우리나라 오씨
도시조(都始祖) 휘 첨(諱 瞻)의 24세손 휘 현필(賢弼)의
 7세손인 휘 천우(天佑) 호 청암공(號 靑巖公)이시다,

장흥오씨 선영 사진 오공임 기자
장흥오씨 교수공파 재각 사진 오공임 기자

【서울=코리아플러스방송】 오공임 기자 = 장흥오씨 본관과 시조

장흥오씨 시조(長興吳氏 始祖)는 우리나라 오씨 도시조(都始祖) 휘 첨(諱 瞻)의 24세손 휘 현필(賢弼)의 7세손인 휘 천우(天佑) 호 청암공(號 靑巖公)이시다,

휘 현필(賢弼)은 휘 수권(守權)의 셋째 아들로 고려 명종(明宗)때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고종(高宗)때 현보(賢輔), 현좌(賢佐)와 함께 거란을 토벌한 공으로 보성군, 장흥군, 화순군, 함양군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그의 장자계(長子系) 휘 숙부(淑富)의 후손은 보성파와 장흥파로, 차자(次子) 휘 양(良)의 후손은 보성파로, 삼자 휘 원(元)의 후손은 화순파로 , 사자 휘 광휘(光輝)의 후손은 함양파로 각각 수봉(受封) 또는 습봉(襲封)되어서 분적(分籍)되었는데 그 중 장자계(長子系) 보성과 장흥 두 성씨가 같이 하여 휘 숙부(淑富), 한경(漢卿), 기지(祈之), 광신(廣信), 사렴(思廉)을 거쳐 휘 천복(天福)이 보성군에 봉군되고, 휘 사충(思忠)의 장자 휘 천계(天啓)가 동평군이 되어서 이후 후손들은 보성오씨로 하고, 장흥오씨는 휘 사충(思忠)의 차자(次子) 휘 천우(天佑)께서 조선 태종조(太宗朝)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후 전라병마절도사(全羅兵馬節度使)를 지낸후 장흥부(長興府)에 정거(定居)하시니 장흥군(長興君)에 습봉(襲封)되어서 후손들이 장흥을 본관(本貫)으로 하였으므로 공(公)이 장흥오씨(長興吳氏)의 시조(始祖)이시다, 그리고 장흥오씨의 창시지조(刱始之祖)이신 휘 현필(賢弼)을 비조(鼻祖)로 모시고 있다,

휘 현필(賢弼)의 장자 휘 숙부(叔富)는 고려때 예부좌시랑(禮部左侍郞)를 역임하였고, 손(孫) 휘 한경(漢卿)은 문과에 급제하여 삼사우사를 거쳐 첨의찬성사를 역임하였고, 공의 육세선 휘 사충(思忠)은 공민왕때 문과 호조전서에 좌명개국삼등공신이 되고 영성부원군에 봉해 졌으며, 이어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와 정당문학을 거쳐 관찰사를 역임하였디.

휘 천우(天佑) 자(子) 휘 순적(順迪)은 승정원 좌승지를 지내고는 영해(寧海)로 내려가서 경치좋은 대나무숲과 못가를 찾아 자연을 즐기면서 은거(隱居)하시니 세인(世人)들이 호(號)를 죽은(竹隱)이라 하였다,

그러나 안타까운 일은 잦은 병란(兵亂)으로 휘 숙부(淑富)이하 누대(루代)를 실전(失傳)하여 묘소(墓所)와 기타 사적(事蹟)를 자세히 알수 없어서 휘 숙부, 한경, 기지, 광신, 사렴, 사충은 충북 청원군 현도면 달계리에 설단(設壇)하여 모시고 있고 장흥오씨 시조 휘 천우공(天佑公)과 순적(順迪)은 1964년 갑진(甲辰)에 익산군 금마면 갈산리 비선산에 신단(神壇)을 설단(設壇)하여 매년 음 2월 마지막주 일요일에 향사(享祀)하고 있다.

(오선수  장흥오씨 자료 작성자)

장흥오씨 현재대종회장 오석만 (吳錫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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