섯알 오름은 작고 나지막한 3개의 말굽형 분화구가 나란히 줄지어 분포되어 있는 곳으로 아담한 동산과 같은 느낌

 

【제주= 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섯알 오름 (제주= 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제주= 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섯알 오름은 지난 1950년 6월 25일 남침 전쟁이 발발하자 모슬포 경찰서 내에서 예비검속한 344명 중 252명을 동년 7월 16일과 8월 20일 암매장한 사건이다.

섯알모름 희생자 검정고무신= 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음력 7월7석 새벽 섯알오름은 이승과 저승 간 절연의 황천길에 검정 고무 신발을 벗어던져 족적을 가족에게 알리려 했다. 

섯알 오름 탄약고 터에 이르자 무릉 지서에 구금되었던 50여 명은 폭파된 탄약고 남사면에서 모슬포 절간 창고에 구금됐던 130여 명은 물웅덩이에 매장했다.

정부군은 민간인 출입을 통제하는 한편 군경에 의한 경비를 강화했다.

섯알오름 희생자 명단= 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1950년 8월 20일 새벽 섯알 오름 근처에서 소를 관리하던 대정읍 상모리 거주 유계동 씨가 현장을 목격하고 바다로 고기잡이 가던 상모리 이경이, 정공상 씨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 두 멸에 의해 유가족들에게 비보가 전해졌으며 전갈을 받은 300여 명 유족들이 현장에 집결해 시신 27구를 수습을 하다 발각 됐다.

그 당시 겁에 질린 유족들은 수습했던 시신을 구덩이에 원상태로 회복시키고 해산했다.

시신수습 만벵디 묘역안장= 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유족들은 중 만벵디 유족들은 1956년 4월 30일 새벽을 이용 50구의 유해를 발굴 만벵디 공동 장지에 안장했다.

​그 후 유족들의 나 관계당국에 꾸준한 탄원과 청원에 의해 유해발굴이 허용되자 동년 5월 18일 시신이 수장된 물웅덩이에서 양수기로 물을 퍼내어 149구의 유해를 발굴했다.

섯알오름 학살터 둘래길 소나무 두그루에 가시나무가 붙어 기생하는 모습이 희생자의 아픔을 표현하는 것같다.= 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희생자의 치아와 옷 유품 등으로 신원이 확인된 17구는 각자의 묘지로 옮겨지고 자타 식별이 되지 않는 유해는 준비된 칠성판 위에 머리뼈, 팔뼈, 다리뼈를 132구로 구성해 대정읍 상모리 안장, 백조일손 지지(百祖一孫之地)라 명했다.

섯알오름 희생자 추모비= 코리아플러스 김종필 기자

백조일손지묘(百祖一孫之墓), 서로 다른 132분의 조상들이 한날한시 한곳에서 죽어 뼈가 엉기어 하나가 됐으니 그 후손들은 이제 모두 한 자손이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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