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 윤봉길 의사 기념관 찾아 추모

【중국=코리아플러스】 장영래 김용휘 기자 = 3일 김태흠 지사는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찾아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순국선열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다. (사진=충남도)

【중국=코리아플러스】 장영래 김용휘 기자 = 김태흠 충남도지사는 지난 3일 투자유치 등을 위해 중국을 순방 중에 상하이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루쉰(홍커우)공원 내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찾아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순국선열의 숭고한 뜻을 기렸다.

이날 궁정 상하이시장과 간담회를 마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윤 의사 기념관을 찾은 김 지사는 조국 독립을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에 헌화와 묵념하고 만보산 사건 등으로 악화된 한ㆍ중 관계를 회복시킨 상하이의거의 의미를 되새겼다.

만보산 사건은 지난 1931년 7월 2일 중국 지린성 창춘현 만보산지역에서 일제의 술책으로 조선인 농민과 중국인 농민이 벌인 유혈사태이다.

당시 일제는 만주에 세력을 형성한 중국 민족운동 세력과 조선인 민족운동 세력을 분열시키고 만주침략과 대륙침탈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이 같은 일을 벌였다.

일제의 치밀한 음모로 한ㆍ중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됐지만 지난 1932년 4월 29일 루쉰공원에서 열린 일본군의 상하이 점령 전승 경축식에서 윤 의사가 수통형 폭탄을 단상 위로 투척한 상하이의거를 계기로 한ㆍ중 관계는 다시 회복됐다.

당시 상하이의거에 감명 받은 장제스 주석은 폐쇄 위기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운영비와 임시정부 요인들의 생활비 등을 전폭 지원하기 시작했다.

지난 1908년 충남 예산에서 5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윤 의사는 1931년 중국 상하이에 도착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지도자인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나 의열투쟁의 결의를 다졌고 1932년 4월 26일 김구 선생이 주도하던 한인애국단에 가입한 윤 의사는 3일 뒤 상하이의거 직후 현장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이 의거로 시라카와 대장과 가와바타 거류민단장이 사망했고 노무라 중장과 시게미쓰 공사 등이 중상을 입었다.

가혹한 고문과 취조를 받은 윤 의사는 같은 해 5월 상하이 파견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2월 19일 가나자와 육군형무소 공병 작업장에서 25세 나이로 총탄을 맞고 순국했다.

김 지사는 임시정부 방명록에 ‘애국선열들의 정신을 계승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나가겠습니다’라고 적은 뒤 윤 의사 기념관에서는 흉상 앞에 헌화하고 묵념하며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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