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더코리아플러스커뮤니케이션 】 이광섭 기자 = 대전광역시 대덕구 중리동에 '송애당'은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로 1989년 3월 18일로 지정되었다. 송애당 전경 촬영 / 이광섭 더코리아플러스커뮤니케이션 기자 

【대전 =더코리아플러스커뮤니케이션 】 이광섭 기자 = 대전광역시 대덕구 중리동에 '송애당'은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로 1989년3월18일로 지정됐다.

조선 인조(재위 1623~1649) 때 김경여(1596~1653)가 지은 별당건물이다. 그의 호를 따서 송애당이라 이름지었다. ‘송애’는 눈서리를 맞아도 변치않는 소나무의 곧은 절개와 높이 우뚝 선 절벽의 굳센 기상을 간직하겠다는 뜻으로, 김경여의 높은 기개와 충성심을 잘  표현하고 있다.

송시열이 지은 송애정사기가 전하며 상량문은 창건 때의 것은 없고 중수 때의 것만 있다. 중수는 기록상 적어도 2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첫번째 중수는 중수 상량문의 찬자인 송환기(1728-1807)의 생존 시기로 추정되며, 그 다음으로 확인되는 것은 1889년(고종 26)이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며, 구조는 왼쪽 2칸은 대청마루이고, 오른쪽 1칸은 온돌으로 꾸몄다.

김경여는 1624년 (인조 2년) 별좌가 되었으며, 그후 직장주부 부여현령을 역임하였다. 1632년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 정랑을 거쳐 사헌부지평에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독전어사가 되어 왕을 호종하여 남한산성으로 피난했다가 이듬해 벼슬을 그만두고 회덕으로 돌아왔다.

1649년 대사간에 1650년 충청도 관찰사가 되어 군사력 배양에 힘썼다. 동문으로는 동춘당 송준길, 우암 송시열, 신독재 김집과 교유하였으며 사계 김장생의 제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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