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미학' 깃든 슬로시티 체험

【청송=코리아플러스】장영래 기자 = 푸른 솔의 고장 경북 청송은 산촌형 슬로시티다.

청송은 한자로 푸를 ‘청(靑)’, 소나무 ‘송(松)’자를 쓴다.

경관이 수려한 주왕산과 주산지, 선조의 생활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덕천마을, 전통문화의 멋을 느낄 수 있는 청송백자와 천연 염색, 전통 한지, 옹기까지 다양한 매력이 넘친다.

청송 내에서도 이번에 찾아간 ‘덕천마을’은 신선이 노닐다 간 듯 산새의 아름다움이 뛰어난 곳이다.

송소고택에서의 달콤한 하룻밤을 보내면서 천연염색, 청사초롱행렬체험, 부자흙 훔치기 등 다양한 체험을 하면서 덕천큰내이야기길(숲길 2.5㎞, 마을길 3.7㎞)을 걸으며 도시에서 지친 마음을 치유할 수도 있다.

그래서 덕천마을의 하루는 짧다.

◆ 역성혁명의 숨겨진 발자취를 따라 떠나는 여행

군청 소재지인 청송읍에서 약 3㎞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덕천마을에 들어서면 널찍한 논과 밭 뒤로 단아한 한옥들이 자태를 뽐낸다.

앞으로는 용정천이 부드럽게 감싸주고 있다.

덕천마을은 고려 말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반발해서 귀향한 악은(岳隱) 심원부의 후손들이 뿌리내리며 사는 청송 심씨의 본향이다.

고려관리였던 심원부는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반대해 벼슬에 나가지 않았고, 그의 후손들도 한양을 등지고 청송에서 흩어져 600여년 뿌리내리고 살았다.

이들은 9대에 걸쳐 250여 년 동안 만석꾼 소리를 들었다. 광복 이전까지만 해도 ‘청송에서 대구까지 가려면 심부자 땅 밟지 않고는 못 간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덕천마을은 옛날부터 왼쪽에 있다하여 상덕천(上德川, 지금의 신흥리) 아래쪽에 있다하여 하덕천(下德川, 지금의 덕천리)으로 불리워지기도 했다.

또 조선 택리지(擇里志)에는 “상촌 왈 장촌, 하촌 왈 심촌(上村曰 蔣村, 下村曰 沈村)”이라고 하였는데 덕천마을 중 위쪽에는 조선 숙종때 의성에서 이곳에 입향(入鄕)한 것으로 전해오는 아산장씨(牙山蔣氏)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아래쪽에는 청송을 관향으로 하는 청송심씨(靑松沈氏)가 세거를 이루고 있다.

◆ 시간이 머물다 나가는 곳…청송(靑松) 덕천마을

덕천마을은 자랑거리가 참 많다. 지난 2011년 국제 '슬로시티(Slow City)' 마을로 선정됐다.

그렇게 청송한지장, 천연염색, 청송 백자전수장 등 전통 문화를 천천히 끈질기게 계승하면서 느린 삶을 실천하는 곳이다.

같은 해 1000대1이라는 바늘구멍을 뚫은 ‘한국 관광의 별'에도 뽑혔다.

덕천마을의 숨은 명소는 큰내이야기길로 돌아보자.

덕천마을과 마을 뒤의 숲을 따라 약 6.2㎞의 둘레길이 조성돼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책할 수 있다.

웅장한 자연을 벗 삼아 그 아름다움에 빠져 걸어보면 보드라운 흙내음이 흠뻑 전해진다.

마을의 왼쪽 끝으로 가면 항일독립운동 유적인 소류정(小流亭)을 만날 수 있다.

소류정은 구한말 청송 의병대장을 지낸 소류(少流) 심성지(沈誠之, 1831~1904) 선생이 경전을 연구하며 제자들과 함께 학문을 연구하던 곳이다.

허나 그 중요성이 많이 알려지지 않아 2012년에야 문화재 497로 등록됐다.

소류정이 있는 곳과는 반대로 가면 초전댁(草田宅)과 창실고택, 요동재사(堯洞齋舍)가 자리 잡고 있다.

초전댁은 조선 순조 때 통정대부명지중추부사를 지낸 청송심씨 석촌공파(石村公派) 17세조 덕활(德活)이 요절한 아우 덕종(德宗)의 양자로 입적한 친아들 헌문(憲文)의 네 번째 돌을 기념해 1806년(순조 6) 무렵에 건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21세조인 선해(宣海)가 1900년에 보수해 대대로 살고 있다.

건물의 남쪽과 동쪽으로는 토담이 있고 담장을 따라 정원과 텃밭을 마련해 놓았으며 건물 오른쪽에는 예로부터 사용해온 오래된 우물이 남아 있다.

창실고택은 일제강점기인 1917년 3월에 지어져 100여년이 흘렀다.

심호택이 동생이 결혼을 하여 분가를 위해 지어준 집이다. 부속채는 초가로 지어졌다.

요동재는 청송심씨 12세 손인 심응겸(沈應謙)이 학문을 연구하면서 쉬던 곳이다.

지난 1890년대 보수 공사를 한 뒤 2003년 유교문화권사업으로 해체 보수공사가 이루어져 새로이 단장됐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 구조이다.

이밖에도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많다.

그래서 덕천마을 여행은 잠깐 찾아와서 한두 시간 슥 훑고 지나가서는 안 되는 ‘명품 여행지’이다.

◆ 툇마루에 앉아서 하늘 바라보니… 자연의 소리 들려오네

돌담 너머로 보이는 송소고택의 모습. 이 고택은 국가 중요 민속자료 250호로 지정되어 있다.(사진/청송군)

덕천마을에는 삼부자댁으로 알려진 송소고택을 비롯해 수 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즈넉한 고택에서 옛 선현들의 숨결을 체험하고 전통을 느낄 수 있다.

고택들은 대부분 'ㅁ'자 형태로 지어져 있다.

작은 규모는 안채, 사랑채, 행랑채, 부속채로 둘러싸인 사각형 형태다.

국가 중요 민속자료 250호로 지정된 송소고택은 조선 영조 때 만석의 부를 누리던 심처대의 7세손 송소 심호택이 호박 골에서 조상의 본거지인 덕천마을에 이거 하면서 지은 99칸의 대저택으로 1880년경에 지어졌다.

넓은 부지에 고풍스러운 멋을 간직한 사랑채와 고즈넉한 안채, 솟을대문, 행랑채, 별채, 곡간 등이 조화롭게 배치됐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크고 화려한 큰 사랑채는 주인이 거처하던 곳이다.

우측으로 작은 사랑이 있고 그 뒤로 안채가 있다.

건물에 독립된 마당을 따로 둔 조선시대 상류층의 전형적인 주거 형태다.

대청마루에는 세살문 위에 빗살무늬 교창을 달았다.

별당은 2채인데, 하나는 대문채이고 또 하나는 별당으로 정면 4칸, 측면 2칸이다.

대문 안쪽에는 유교문화의 삶을 엿볼 수 있는 헛담이 있다.

남녀가 유별하던 시절, 집안 여인들이 사랑채의 남성과 마주치지 않게 하기 위해 헛담을 쌓았다.

툇마루 밑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하얀 고무신과 청색 고무신, 그 위로 매달려 있는 짚진 두 짝이 한옥의 정취를 더한다.

옛 선조들은 산이나 봉우리가 보이도록 사랑채와 마루 등을 앉혀 자연을 집 안으로 품었다고 한다.

마루에 올라 작은 방으로 들어가 앉으니 콩기름을 먹인 장판지가 피로를 누그러뜨린다.

송소고택의 바로 옆에는 송정고택이라는 또 다른 기와집이 남아 있다.

송정고택은 송소 심호택의 둘째 아들 심상광이 거주했던 고택으로 1914년에 지어졌다.

2015년 5월 18일 문화재자료 631호로 지정됐다.

송정고택 마당에서 이어진 뒷산에 올라 덕천마을을 내려다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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