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플러스 회장, 리더십훈련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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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원 칼럼】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기인이신 이지함 선생의 호는 토정입니다.

토정 선생이 천안 삼거리에 위치한 주막집에 머무른 적이 있었습니다. 마침 그 주막에는 각지에서 올라온 젊은 선비들이 모여있었는데 그들은 한양에서 곧 있을 과거를 보기 위해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젊은 선비들은 당대에 큰 학자이며 기인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토정 선생을 만나기 위해 선생의 방을 찾아들었습니다. 젊은이들을 말없이 바라보시다가 문득 한 젊은 선비를 향해 이르기를, “자네는 이번 과거에 급제할 운이 없으니 서운하겠지만 그냥 고향에 돌아가시게나”라고 했습니다. 모두들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민망해진 그 젊은이는 말없이 일어나 인사를 드리고는 뒷거름 질로 방을 빠져나왔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청천벽력같은 말에 아연 해진 그 선비는 멍한 느낌에 주막을 나와서는 대문 옆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쭈그려 앉아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동안 과거급제를 목표로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해왔는데 시험을 보기도 전에 고향으로 내려가라니 망연자실 할 수 밖에 없었고 대학자이신 선생의 말을 무시하고 과거를 보고 만일 낙방이라도 하면 평소 흠모해온 토정 선생의 말씀을 우습게 아는 놈이 되겠기에 이를 어쩌면 좋을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멀거니 땅바닥을 내려다 보고 있는데 마침 수많은 개미떼들이 줄지어 앞의 개미를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이 개미들은 어디를 향해 이렇게 질서정연하게 가고 있는 것일까 하는 호기심에 선두에 선 개미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선두에 선 개미가 있는 곳에서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곳에 큰 항아리가 놓여있었고 그 독 안에는 물이 가득 차 금방이라도 넘칠 듯이 찰랑거리고 있었습니다. 부엌에서 쓰고 버린 허드렛물이 하수관을 통해서 항아리에 떨어지게끔 되어있었고 물이 가득 차면 자체의 무게로 인해 독이 기울어져 도랑 쪽으로 물이 쏟아지도록 만든 구조였습니다.

금방이라도 부엌 쪽에서 누군가가 물을 버리면 그 독이 기울어져서 이동하고 있는 개미 떼들이 때아닌 물벼락을 만나 다 죽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황급히 뛰어가 구정물이 가득한 독을 힘들게 옮겨 도랑에다 대고 부어버렸습니다. 다시 빈 독을 옮겨 제자리에 갖다두고는 가뿐숨을 몰아쉬며 개미떼를 보니 개미의 긴 행렬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가던 길을 계속해서 가고 있었습니다.  젊은 선비는 조금 전에 앉아있던 자리로 돌아가 쪼그리고 앉아 다시금 골돌히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때에, “자네 거기서 무엇을 하는가?”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보니 언제 오셨는지 토정 선생께서 대문 앞에 서서 하시는 말씀이었어요. 벌떡 일어나 머리 숙여 인사드리니 젊은 선비에게 가까이 오시더니 토정 선생이 흠칫 놀라며 이렇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자네는 아까 방에서 낙방할 운이니 고향으로 내려가라고 한 바로 그 젊은이 아닌가?”

“네, 그렇습니다” 그러자 토정 선생이 머리를 갸웃거리시며 하시는 말씀이, “내가 조금 전에 자네에게 얘기할 때의 상과 지금 보는 자네의 상이 완전히 다르니 어찌 된 일인가. 얼굴에 광채가 나고 서기가 충천하니 과거에 급제를 하고도 남을 상인데, 도대체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상이 바뀌었단 말인가”라고 하셨습니다. 젊은 선비는 너무도 황당하여 도대체 무슨 말씀이시냐며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니, “잠깐 사이에 자네의 상이 아주 귀한 상으로 바뀌었네. 분명 무슨 일이 있었을 테니 내게 숨김없이 말해보게.” 젊은 선비는 문득 항아리를 옮긴 일이 생각이 나서 그사이 일어난 일을 소상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난 선생께서 하늘을 바라보시고는, “수백, 수천의 생명을 살리었으니 하늘인들 어찌 감응이 없겠는가!” 하면서, “자네는 이번 과거에 꼭 급제할 것이니 아까 내가 한 말은 마음에 두지말고 한양에 올라가 시험을 치르시게“하며 젊은이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 주시고는 주막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이 젊은 선비는 시험을 쳤고 장원급제를 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상(相)도 마음에 의해 뒤바뀌게 마련입니다. 그 마음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개미를 그저 개미로만 안다면 하찮은 개미지만 개미를 생명으로 본다면 개미도 존귀한 생명인 것 입니다. 일체의 모든 생명체의 산목숨인 생명이 나의 생명과 결코 다르지않은 것이고 일체의 모든 생명체의 생명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말을 하지 못하는 미물이라도 근본에서 둘이 아닌 일체가 평등하고 자타가 일여(一如)한 즉 같은 도리인지라, 둘이 되 하나요. 하나이면서 전체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생명체를 소중히 안다면 이로 인한 자신의 상이나 운명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상기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모두가 선행(善行)을 쌓아 신축년에는 좋은 기운이 한국인에게 듬뿍 안겨 오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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