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플러스 논설고문, 미국 시카고 세계합기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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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계도의 세상만사】 제1화 : 스키장의 이변

몇 해 전 온 가족이 위스칸신으로 스키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붐비는 주말 스키애호가들 틈에 한참을 어울리다 보니 가족들과 따로 따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러자 30대 중반의 미국인 남자와 짝이 되어 스키 리후트에 올라타게 되었다. 어울리지 않게 뚱뚱한 몸에 불쑥 나온 배 그나마 옷매무새가 흐트러져 엉덩이에 걸친 느슨한 바지에 풀어진 윗옷 단추 탓에 툭 내밀어진 맨살 배통 거기에 터분한 체취에 담배(씨가)까지 피워 문 꼴이 나는 싫었다. “제기랄! 퍽도 지저분한 사람이군.” 나는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스키리푸트가 산 중턱에 다다랐을 때 거기에 세워진 빨간 글씨의 이런 경고문이 있었다. <No Smoking on the chair> (스키리프트 의자에서 담배 피우지 마시오.)

나는 옆의 뚱보 미국인이 ‘금연’ 규칙을 어기는 공중질서 위반자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미워졌다. 두 번째도 그 사람과 또 같은 짝이 되었는데 역시 담배를 피워 문 채였다. 나는 산 중턱의 금연 경고문을 그 사나이가 읽기를 바랬지만 그 사나이는 아랑곳없다는 거친 태도였고 나 혼자 또 <No Smoking on the chair>라는 경고문을 읽으며 지나갔다. 그것을 끝으로 나는 그 지저분한 사나이와 헤어졌다. 그리고 다음 차례의 내 옆자리에는 20대의 예쁜 갈색머리 미녀가 앉았다. 나는 금방 기분이 좋아졌고 서로 인사를 나눈 후 별 의미 없는 얘기지만 서로 주고받으며 산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산 중턱에 세워진 그 경고문은 이렇게 쓰여 있었다.

<No Skiing Under the chair> (스키리프트 밑에서 스키 타지 마시오.> 나는 다음번에 그곳을 지나면서 그 경고문을 다시 똑똑히 읽었다. 틀림없이 <No Skiing Under the chair>였다. 사실 <No Skiing under the chair>와 <No Smokiing on the chair>는 엄청난 차이로 누가 읽어도 그런 큰 실수를 저지를 리가 없으리라는 것은 극히 상식적인 판단이다. 그런 엄청난 차이의 잘못 읽음은 마치 내가 잠시나마 가졌던 좋아함과 싫어함 즉 사랑과 미움의 감정 차이로 비교될 수 있었다. 말하자면 담배를 피워 문 그 청년을 꾸짖고 싶었던 마음을 합리화하기 위해 내가 그렇게 읽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실수를 정신분석학에서는 ‘실착행위’라고 하는데 이에대한 구체적 연구를 했던 최초의 학자는 20세기 초 직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였다. 프로이드는 1915년에서 1917년 사이에 행한 실착행위에 대한 그의 강연 논문 중에서 사랑과 미움에 관련된 실착행위 하나를 소개하겠다. 한 젊은이가 나(프로이드)에게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몇 해 전 우리 부부 사이에 오해가 생겼는데 아내가 너무 냉담하다고 느꼈습니다. 어느 날 아내는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에 책 한 권을 사다 주었습니다. 아내는 그 책이 내게 유익하리라는 생각으로 읽기를 권하며 가끔 재촉을 했는데 그때마다 받아놓은 책을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6개월 후 따로 살고있는 어머니가 병으로 앓아눕게 되었는데 아내가 시어머니 병간호를 자청했습니다. 참으로 고맙고 사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아내가 시어머니 간호를 위해 떠난 후 어느 날 저녁 아내의 성심에 감격하고 감사와 사랑스런 마음을 가득 안고 집에 돌아와 책상에 다가가서 무심코 책상의 어떤 서랍을 열었더니 그토록 오래 찾던 그 책이 거기에 있지 않겠습니까.”이것은 사랑하고 감사한 마음에서 아내를 미워했던 감정이라는 동기 소실과 함께 오랫동안 두고 잊었던 물건을 찾게 된 것이다. 옛날부터 ‘미운 자식 밥 더 주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자기 언행을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있다.“암! 이놈도 이쁜 데가 있지!”지도무난(至道無難) 유혐간택(唯嫌揀擇) -심신명 중에서-

밉다(싫다). 좋다를 가리면 언제 도를 깨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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